天下爲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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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해봤습니다. 예상했던 것과 크게 다르지는 않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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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의 해석학과 동양학 한문해독(훈고학)


   우리가 자주 쓰는 말 중에서 "성인聖人"이라는 말이 있다.

또 이것과 같이 붙어다니면서 "군자"라는 말이 같은 의미로 쓰이는 것 같다. 

"내가 뭐 성인 군자도 아니고..."

위에서 "성인"이란 말은 도덕적인 의미를 쓰였고, 대부분의 사람들도 그렇게 알고 있다.

하지만 "성인"이란 본래 "창작하는 사람"을 말하는 것이었다. (《예기 악기》)

《예기》에는 "현자"라는 말도 나오는데, 성인이 창작한 것을 해석하여 주석을 할 수 있는 사람을 말하는 것이다.

이것을 이해하게 된다면 "경전經傳"의 정확한 의미도 알 수 있다. 쉽게 설명해보면,

경經 - 성인이 창작한 것
전傳 - 현자가 해석한 것

예를 들어서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이란, 성인인 공자가 《춘추》를 창작하여 경이 된 것이며, 좌구명이 해석한 것은 전이 되는 것이다.

물론 이 "경전"에도 해석이 더해져서 "주소"가 붙게 되었고, 이런 유학의 기본 서적들을 우리는 "13경주소"라고 부른다. 

우리 동양은 해석학은 2천년이 넘도록 전성기를 이루었고, 정치, 사회, 윤리 등 인간의 행동지침들이 모두 여기에서 생산되었다. 



   근대의 합리주의에 맞서서 과학주의 비판하는 서양의 하버마스 등의 "해석학"은, 그리스 로마 고전과 성서의 해석학에서 그 모델을 빌려왔다고 한다. 

인간 세계는 대화로서 강요가 없는 합의를 통해서 문화를 만들어 왔는데, 과학과 합리주의가 그것을 파괴했다는 것이다. 

해석학이 단순한 훈고에서 벗어나 적극적인 대화를 통해서 "의미"와 "진리"를 이끌어내는 것처럼, 이 원리로 인간세계를 다시 구성해야한든 뜻 같다.   

하지만 동양 해석학의 역사를 볼 적에 그렇게 낙관적으로만 생각할 수 있을까? 



  전한시대에는 동중서를 중심으로 하는 공양학(춘추공양전)이 크게 유행하였는데 참위학과 후대 문벌 귀족정치의 단초가 되었다. 

후한 시대에는 이것에 대한 반성으로 단순한 훈고학(정현이 대표적)이 발달하였다.

주자는 송나라 시기에 "사서"를 정하고서 고대의 유학을 새롭게 해석하여 "신유학"을 창조하였다.

청나라 시절에는 이것에 대한 반성으로 언어학 뿐만이 아니라 서지학과 박물학 등이 결합된 단순한 "고증학"이 크게 유행하였다. (한국에서는 실학으로 불렸다)



   적극적인 해석학의 엉터리 해석을 논리적으로 증명하고,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서 단순한 해석학이 유행하였던 것이다. 

적극적인 해석학이라고 독재와 독선이 없을까? 동양의 경우를 보면 억압과 불평등은 이 해석학을 기초로 생산된 적이 많았었다.

단순한 "훈고학" 또는 단순한 "고증학" - 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실제로 그 세계에 들어가보면, 그 지식과 지혜의 넓이가  깊지 않고는 단 한마디도 할 수 없는 세계이기도 하다.

앞에서 언급했던 "성인"이라는 말도 그러하다. 당시의 문화와 생각을 이해하지 못하고서 무슨 적극적인 해석을 하겠는가? 

내가 앞으로는 "의리"를 앞세우며 뒤로는 억압과 불평등을 눈감았던 공양학이나 성리학을 비웃으며 고증학에 빠진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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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科玉條금과옥조 노자(老子) 제자백가

《백서노자을본(帛書老子乙本)》
知不知尙矣, 不知知病矣. 지불지상의 하며 불지지병의 니라.
아는 것을 알지 못하는 것이 높은 것이며, 알지 못하는 것을 아는 것은 병이다.


홍매(1123-1202)《용재속필》--- 소하가 한신을 속이다(蕭何紿韓信)
信之為大將軍,實蕭何所薦。今其死也,又出其謀。故俚語有『成也蕭何,敗也蕭何』之語。
한신이 대장군이 된 것은 소하의 추천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의 죽음 또한 소하의 모략에서 나온 것이다. 그러므로 속어(민간)에서 『한신을 만든 사람도 소하요, 한신을 패망시킨 것도 소하다.』라는 말이 있게 되었다.


사마광(1019-1086)《온국문사마정공문집》(사마광의 문집)
  新進後生, 未知臧否, 口傳耳剽,翕然成風. 至有讀《易》未識『卦』『爻』, 巳謂<十翼>非孔子之言. 讀《禮》未知篇數, 巳謂<周官>爲戰國之書. 讀《詩》未盡<周南><召南>, 巳謂毛․鄭爲章句之學. 讀《春秋》未知十二公, 巳謂《三傳》可束之髙閣. 循守注疏者, 謂之腐儒, 穿鑿臆說者, 謂之精義.
신진후생들은 옳고 그름을 알지 못하고, 구전(소문)만 듣고서 따라함이 하나의 풍조를 이루었다.
《주역》을 읽고도 『괘』와 『효』를 구분하지 못하면서 <십익>은 공자의 말이 아니라고 한다.
《예》를 읽고도 그 편수도 모르면서 <주관>은 전국시대에 지은 책이라 한다.
《시경》을 읽고도 <주남>과 <소남>도 모르면서 모시와 정현의 주는 장구지학이라고 한다.
《춘추》를 읽고도 12공도 모르면서 <삼전>은 모두 묶어서 고각에나 보존시켜야 할 책이라고 한다.
주소자(고증가)들을 썩은 유학자라 하고, 천착(이치에 맞지 않는 말)하고 억측하는 사람들을 정의라고 일컫는다.


양계초(1873-1929)《중국근삼백년학술사》
無論做哪門學問, 總須以別僞求真爲基本工作. 因爲所憑借的資料若屬虛僞, 則研究出來的結果當然也隨而虛僞, 研究的工作便算白費了. 中國舊學, 十有九是書本上學問, 而中國僞書又極多, 所以辨僞書爲整理舊學里頭很重要的一件事.
어떤 학문을 막론하고, 거짓을 구별하고 진리를 탐구하는 것을 기본 작업으로 삼아야 한다. 만약 허위의 자료를 이용하게 된다면, 연구결과도 당연히 허위를 따르게 되며, 연구 작업도 헛되게 된다.
중국의 옛 학문은 열에 아홉이 서적을 근간으로 하는 학문이었기 때문에, 중국에서는 위서(僞書)가 극히 많았다. 그래서 서적을 변위(辨僞;거짓을 변별하다)하는 일이 옛 학문 속에서 정리가 된 것은 매우 중요한 일대 사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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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관 - 한혁 지명고(학자들은 알지 못했다?) 변위학(辨僞學)-한국

《천년의 금서》에 대한 역사적 비판 - 1

han.pdf

첨부된 파일은 양관 선생의 <서주사>에 있는 것으로, <시경> "한혁"편에 보이는 "한나라"의 위치를 고증하고 있다. 

한혁에 보이는 "연사"는 남연으로 보고 있으며, "맥"은 <순자>나 <사기 조세가>에 보이는 진秦나라의 북쪽에 위치한 맥이나, 조趙나라의 북쪽에 있는 맥이다.

한나라의 위치에 대해서는 역대로 3가지의 학설이 있었는데, 저자는 고염무의 "하북설"을 지지하고 있다.

또한 고형(시경금주)과 양백준(춘추좌전주) 선생도 이 학설을 지지하고 있음을 말하고 있다. 

뇌학기는 특이하게 하북에서 하서 이동설을 주장하고 있다. (잠부론의 영향인 듯?)

역대로 편찬된 <시경>의 연구서들은 현재도 산처럼 쌓여 있고, 과거 동양의 교과서 역활을 했던 13경. 그 배경인 주나라에 관한 연구서들도 바닷가의 모래알처럼 많다.

옛날에는 <시경>과 당시를 통째로 외우는 것이 바로 교양의 척도이기도 했다. 

그런데 역대에 이름이 높았던 학자들이 <시경>의 "한혁"을 몰랐다? 

ㅋㅋㅋ

바로 그대가 정확한 상황을 잘 모르고 말하는 것이겠지요? 

"학계가 이러이러하다"란 말을 아무렇게나 사용하고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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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 잠정 휴먼(휴면) 아Q정전


요즘 많은 생각들이 교차합니다.

저의 블로그가 애초에 목적과는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 같습니다.

블로그의 제목 "천하위공天下爲公"은 저의 신념이기도 합니다.

예(규칙)란 구분함(분分)이 있어서 차별로 이어지고, 음악의 가장 큰 목적은 동화(동同)에 있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 동화가 바로 태평(태평도)이며, 태일(태일생수)이기도 하고, 대도(노장)이기도 합니다. 

인터넷의 커뮤니티도 그런 것이겠지요. 같은 분야를 좋아하는 사람들끼리는 동화도 더욱 잘되는 법입니다.

그러나 과거에서부터 동화보다는 차별에 목적을 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차별을 싫어하는 사람들은 분열을 막아보려고 합니다.

차별적이며 공격적인 사람들을 설득하기도 하고, 이들을 비판하는 사람들을 말려보기도 합니다.

초록불님의 말처럼 그 마지막은 폐허로 변하게 됩니다. 

그들은 이것으로 일종에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듯 합니다.

폐허를 만든 장본인들은 또다시 다른 먹이감을 찾아 나섭니다.

또다시 폐허가 됩니다. 계속 반복...

저도 몇차례 목격한 일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블로그로 옮겨왔지만, 다시 그런 현상들이 일어나는 것 같습니다. 

폐허의 원인을 제공할까 저어되고, 저 자신도 신념과 반대되는 행동을 하는 것만 같아서 잠정적으로 휴먼상태에 놔두겠습니다.

그동안 모두 건승하시기를 빌겠습니다. 

그동안 저의 부족한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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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것에 대해서는 더 이상 쓰고 싶지는 않았으나, 사실 관계는 정확히 해 두어야 할 것 같습니다. 응소의 말은 "위만의 도읍"이 사실에 더 가까운 것입니다. <사기색은>에서 글자가 바뀌어 인용된 것이죠.

제가 이것을 처음 알았던 시기는 10년도 더 넘은 것 같습니다. 저도 그렇지만 사람은 부분을 알고서 전체로 착각하는 일이 종종 발생합니다. 그래서 학문에서는 항상 사실에 대한 "겸손"을 강조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사기색은>: 조선왕의 옛舊 도읍이다.


<지리지>: 조선왕 위만滿의 도읍니다.

<자치통감>호삼성 주: 위만滿이 도읍을 정한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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