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科玉條금과옥조

《백서노자을본帛書老子乙本》
知不知尙矣, 不知知病矣. 지불지상의 하며 불지지병의 니라.
아는 것을 알지 못하는 것이 높은 것이며, 알지 못하는 것을 아는 것은 병이다.


홍매洪邁《용재속필容齋續筆》--- 소하가 한신을 속이다蕭何紿韓信
信之為大將軍,實蕭何所薦。今其死也,又出其謀。故俚語有『成也蕭何,敗也蕭何』之語。
한신이 대장군이 된 것은 소하의 추천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의 죽음 또한 소하의 모략에서 나온 것이다. 그러므로 속어[민간]에서 『한신을 만든 사람도 소하요, 한신을 패망시킨 것도 소하다.』라는 말이 있게 되었다.


《온국문사마정공문집》(사마광의 문집)
  新進後生, 未知臧否, 口傳耳剽,翕然成風. 至有讀《易》未識『卦』『爻』, 巳謂<十翼>非孔子之言. 讀《禮》未知篇數, 巳謂<周官>爲戰國之書. 讀《詩》未盡<周南><召南>, 巳謂毛․鄭爲章句之學. 讀《春秋》未知十二公, 巳謂《三傳》可束之髙閣. 循守注疏者, 謂之腐儒, 穿鑿臆說者, 謂之精義.
신진후생들은 옳고 그름을 알지 못하고, 구전(소문)만 듣고서 따라함이 하나의 풍조를 이루었다.
《주역》을 읽고도 『괘』와 『효』를 구분하지 못하면서 <십익>은 공자의 말이 아니라고 한다. 《예》를 읽고도 그 편수도 모르면서 <주관>은 전국시대에 지은 책이라 한다. 《시경》을 읽고도 <주남>과 <소남>도 모르면서 모시와 정현의 주는 장구지학이라고 한다. 《춘추》를 읽고도 12공도 모르면서,《삼전》은 모두 묶어서 고각에나 보존시켜야 할 책이라고 한다.
주소자(고증가)들을 썩은 유학자라 하고, 천착(이치에 맞지 않는 말)하고 억측하는 사람들을 정의라고 일컫는다.


양계초梁啓超(1873-1929)《중국근삼백년학술사》
無論做哪門學問, 總須以別僞求真爲基本工作. 因爲所憑借的資料若屬虛僞, 則研究出來的結果當然也隨而虛僞, 研究的工作便算白費了. 中國舊學, 十有九是書本上學問, 而中國僞書又極多, 所以辨僞書爲整理舊學裏頭很重要的一件事.
어떤 학문을 막론하고, 거짓을 구별하고 진리를 탐구하는 것을 기본 작업으로 삼아야 한다. 만약 허위의 자료를 이용하게 된다면, 연구결과도 당연히 허위를 따르게 되며, 연구 작업도 헛되게 된다.
중국의 옛 학문은 열에 아홉이 서적을 근간으로 하는 학문이었기 때문에, 중국에서는 위서(僞書)가 극히 많았다. 그래서 서적을 변위(辨僞;거짓을 변별하다)하는 일이 옛 학문 속에서 정리가 된 것은 매우 중요한 일대 사건이었다.

by 소하 | 2010/03/08 01:24 | 트랙백 | 핑백(1) | 덧글(24)

개그가 수준급.

정운찬 총리의 발언에 너무 발끈하지 마세요. 그냥 웃으시면 됩니다.


“731부대는 항일독립군. 마루타는 전쟁포로!”


우리 국민들의 얼굴이 하도 죽상이니깐, 한번 크게 웃고 힘내라고 개그를 한 겁니다.


내가 지옥에 가지 않으면 누가 지옥으로 가리라는 부처의 마음이 아니겠습니까?

by 소하 | 2009/11/07 15:22 | 잡설 | 트랙백 | 덧글(8)

내 조국에 칼을 겨눌 수는 없다.

테미스토클레스의 최후

   플루타르코스에 의하면 테미스토클레스는 가문은 매우 빈천했다고 한다. 그가 역사라는 무대에 이름을 남기게 된 것은 “페르시아 전쟁”을 통해서였다. 그가 이끄는 아테네 수군이 페르시아에 결정적인 타격을 주면서 페르시아 전쟁은 끝났다. 


   전쟁이 끝난 후에 그리스인들은 대국 페르시아의 침입을 대비하여 아테네를 중심으로 “델로스 동맹”을 맺는다. 아테네의 독주를 경계한 스파르타는 “펠로폰네소스 동맹” 결성한다. 전쟁을 통해 얻은 인기로 테미스토클레스는 아테네의 정권을 장악하게 되고 민중파의 영수가 된다. 하지만 그를 시기한 보수파(귀족)는 아리스티데스를 내세워 그를 실각시키기로 결심한다. 


   두 동맹을 테미스토클레스는 그리스의 위험요소로 보았다. 두 동맹의 격돌이 그리스 세계에 미칠 파장을 걱정했던 것이다. 그는 “펠로폰네소스 동맹”을 와해시키기 위해 노력하였다. 아테네의 보수파는 이것을 약점 삼아서 테미스토클레스가 그리스의 분열을 조장한다고 그를 몰아부쳤다. 결국 실각당한 그는 아테네에서 추방당한다. 보수파가 은밀히 보낸 자객과 큰 현상금이 걸려서 신변에 위협을 느낀 그는 페르시아로 망명한다. 


   페르시아의 왕은 이 적국의 장수를 정중히 대접하고, 그의 신변을 보장해 주었다. 몇 년 후에 그리스의 수군이 키프로스를 공격하자 마그네시아에 있던 그에게 페르시아의 왕은 은혜를 갚으라고 한다. 테미스토클레스는 적국의 장수였지만, 자신이 어려운 시기에 도와준 왕의 청을 거절할 수가 없었다. 그는 결국 신전에서 신들에게 감사를 드리고, 마그네시아에서 독약을 마시고 자살한다. 비록 자신을 버린 조국이지만 차마 칼을 들이댈 수는 없었던 것이다. 


   페르시아의 왕은 이 소식을 듣고 그를 더욱 깊히 존경하게 되었으며, 그의 가족들은 특별한 대우를 받았다고 한다. 그리스는 그가 죽은 후에 두 동맹이 격돌하는 "펠로폰네소스 전쟁"에 돌입하게 되고, 그리스의 영광은 이 전쟁으로 종말을 고한다.

by 소하 | 2009/11/06 21:48 | 잡설 | 트랙백 | 덧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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