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12월 11일
오성취에 대한 단상.
사실 저 기사도 약간 부정확한 면이 있어 보충해 본다. 한나라 원년의 오성취 기사를 전하고 있는 문헌을 보면 총 다섯가지다.(후대의 삼통에도 보인다.)
《史記ㆍ天官書》: 漢之興, 五星聚于東井.
《史記ㆍ張耳陳餘列傳》: 甘公曰:「漢王之入關, 五星聚東井.....
《漢書ㆍ高帝紀》: 漢元年(BC 206년)冬十月, 五星聚東井, 沛公至覇上.
《前漢紀ㆍ高祖一》:漢元年(BC 206년)冬十月, 五星聚于東井.
《宋書ㆍ天文志》: 漢高入秦,五星聚東井.
저 오성취는 실제로는 BC 205년 7월에 일어난 것으로 1년이 넘는 오차를 보인다. 이것은 한왕조가 천명을 받았다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 조작한 것이다. 후한이나 남북조 시기에 필사 오류의 가능성도 있을 거라 생각되지만, 이것은 마왕퇴의 발굴로 완전히 불식되었다. 한나라 무제 시기의 마왕퇴백서를 보면,
元年冬十月,五星聚於東井... 원년 겨울 10월에 오성이 동정에 모였다.
한나라 이후로 오성취 기사와 천인감응(하늘과 인간이 감응한다는 것. 천명을 말함.) 사상이 서로 결합되었기 때문에 조작된 것이다.
중국의 고대 천문기사는 상당히 많은데, 절대기준의 자료로서 잘 이용되지 않는다. 하상주단대공정에서도 천문기사가 많이 이용되었는데, 기술의 애매함을 고려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 결과에 대해서는 나도 그렇지만 회의적인 사람들이 많다.
헌데 이것을 가지고 과학은 틀릴 수 없다든지, 더 나아가 고적의 위서 판정을 기준으로 삼는다는 것은 사실 웃기지도 않는 일이다. 천문학과 고천문학은 서로 다른 영역이고, 오성취 기사와 천인감응 사상은 서로 다른 사유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 by | 2007/12/11 19:09 | 중국사(中國史) | 트랙백 | 덧글(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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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위의 본문의 연대는 서력전이 맞는 데요....서력전 206년, 서력전 205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