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과 우이.

 우이에 대해서 《서경》과 공안국의 주석을 보면 이렇게 적고 있다.

《尙書ㆍ堯典》分命羲仲, 宅嵎夷, 曰暘谷
(요가) 희중에게 명하시어, 우이에 살게 하니, 해가 뜨는 양곡이다.

孔安國《尙書注》曰「東方之地曰嵎夷. 暘谷, 日之所出也」.
공안국이《상서주》에서 말하길「동방의 땅을 우이라고 한다. 양곡은 해가 뜨는 곳이다.」라고 하였다.


동방의 땅 우이嵎夷는 어디인가? 《한서 지리지》를 보면 “右扶風, 郁夷. 우부풍군에 욱이현이 있다.”라고 적어 놓았다. 우부풍은 장안의 서쪽 관중지역이다. 《한서》의 욱이郁夷는 곧 《상서》의 우이嵎夷를 말하는 것이다. 희중에게 명한 사람은 바로 요임금이다.


檀君與唐堯同日而立, 至禹會塗山, 遣太子夫婁, 朝焉.
단군과 당요(요임금)는 같은 시기에 (나라를) 일으켰는데, 우임금이 도산에서 회맹할 때 태자 부루를 파견하여 조朝하였다.
--《세종실록지리지》에 인용된《단군고기》


요임금과 단군은 같은 시대에 나라를 세웠고, 요가 동쪽땅인 우이와 양곡에 희중을 살게 한다. 그 땅이 지금의 섬서성 시안(장안)의 서쪽땅인 것이다. 후대로 내려오면 양곡을 아예 동이지역이라고 부른다. 이것은 곧 우이와 양곡暘谷은 물론 그 동쪽의 땅이 단군조선의 영토였음이 말하는 것이고, 중원은 옛 시기에 고조선의 영토였음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지명은 오랜 시간이 지나도 옛 흔적을 간직하는 법인데, 바로 위와 같은 경우다. 후대 중원을 장악한 한나라는 조선과 동이의 역사를 말살하고, 춘추필법으로 사서를 왜곡하였지만, 옛 지명만은 모두 지울 수는 없었던 것이다.


환빠가 되려면 이 정도 방증은 가지고 논리는 펴야 하지 않을까? 너무 무리한 바램일까?

by 소하 | 2008/01/27 13:56 | 한국사(韓國史) | 트랙백 | 핑백(1) | 덧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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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과 우이1 http://tinis74.egloos.com/1343875후한 시대의 허신이 편찬한《설문해자》을 보면 "우이嵎夷"를 "嵎우銕철"로 기록하고 있다. "銕철"자는 곧 청동기나 철기를 사용하던 무리란 뜻이다. 《 ... more

Commented by 초록불 at 2008/01/27 14:11
이 떡밥은 누군가 물어가서 까욱댈 것 같습니다.
Commented by 한교 at 2008/01/27 14:21
잘보고 감니다 감사.
Commented by 소하 at 2008/01/27 14:32
초록불/ ㅋㅋ.
한교/ 네^^.
Commented by 소하 at 2008/01/27 1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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