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동중의 <삼성기> 고찰 - 본론2

서론

본론1


이제 원동중의 <삼성기>에 마지막 카운터 펀치를 날릴 때가 왔다. 우리 모두 가련한《환단고기》에 명복을 빌어 주도록 하자.


4. <삼성기>와《사기》
내가 <삼성기>에서 주목한 부분은 참위서《용어하도龍魚河圖》다. 참위서란 예언이나 징험. 주술 등을 적어 놓은 것으로, 무당이나 방술사들이 만든 것이다. 직접적인 사료로 쓰기에는 어려운 것인데,  《사기정의》에서는 참고사항으로 보충한 것일 뿐이다.

방술사의 기원에 대해서

《용어하도》는 현재 전해지지 않는데, 《사기주》뿐만 아니라 다른 곳에도서 인용하고 있기 때문에 고찰이 가능하다. 《용어하도》 본문과 각 시기의《사기정의》에 인용된 내용을 보도록 하자.

※ 《용어하도》송원시대 판본(인용)
黃帝攝政, 蚩尤兄弟八十一人, 並獸身人語, 銅頭鐵額, 食沙石, 造兵杖, 威震天下.
송본《태평어람》872 인용 <용어하도>
黃帝攝政, 前有兄弟八十一人, 並獸身人語, 銅頭鐵額, 食沙石子, 造立兵杖, 刀戟大弩, 威振天下.
송본《태평어람》719인용 <용어하도>
黃帝時, 有蚩尤, 兄弟八十一人, 並獸身人語, 銅頭鐵額, 食沙石子, 造立兵杖, 刀戟大弩, 威振天下.
송본《예문유취》인용 <용어하도>



※ 《사기정의》- 원간본 《역림주》에서 인용(사기정의를 직접 인용한 부분.)
《史記正義》曰《河圖龍魚》云
黃帝攝政, 有蚩尤兄弟八十一人, 獸身人語, 銅鐵額, 能作大霧, 食沙, 造五兵, 威震天下.

※ 《사기삼가주》에서 인용.
《사기정의》송원명나라 시기의 판본.
黃帝攝政, 有蚩尤兄弟八十一人, 並獸身人語, 銅鐵額, 食沙, 造五兵仗․刀戟大弩, 威振天下. 송 황선부본《사기》1196년
黃帝攝政, 有蚩尤兄弟八十一人, 並獸身人語, 銅鐵額, 食沙, 造五兵仗․刀戟大弩, 威振天下. 원 팽인원본《사기》1288년
黃帝攝政, 有蚩尤兄弟八十一人, 並獸身人語, 銅鐵額, 食沙, 造五兵仗․刀戟大弩, 威振天下. 명 남감본《사기》1530년
黃帝攝政, 有蚩尤兄弟八十一人, 並獸身人語, 銅鐵額, 食沙, 造五兵仗․刀戟大弩, 威振天下. 명《사기평림》1577년


글자가 강조된 부분을 유심히 살펴보라. 《용어하도》의 원래 문장은"銅頭鐵額, 食沙石子동두철액, 식사석자"(청동 머리에 쇠이마였으며,  모래와 돌을 먹고)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사마정의《사기정의》에서는 "銅鐵額, 食沙동철액, 식사"로 잘못 인용했다는(아니면 줄여서) 사실을 알게 된다. 이후 청나라 시대에 판각된 《사기》를 보자.


《사기정의》청나라 시기의 판본.

黃帝攝政, 有蚩尤兄弟八十一人, 並獸身人語, 銅頭鐵額, 食沙, 造五兵仗․刀戟大弩, 威振天下. 청 무영전본《사기》1739년
전본고증: 又《正義》「並獸身人語, 銅頭鐵額 」<監本>作「銅鐵額 」臣照○按徐陵文「銅頭鐵額」興暴軒年「頭」字缺今添('두'자가 빠졌으므로 지금 보충한다.)
청나라 무영전본은 명나라 국자감본을 저본으로 삼아서 편찬된 것이다. 얼마간의 교정과 교감작업을 하였는데, 이것을 흔히 '전본고증'이라 부른다. 이 전본고증에서 '동철액'을 '동두철액'으로 교정한 것이다.

黃帝攝政, 有蚩尤兄弟八十一人, 並獸身人語, 銅頭鐵額, 食沙石子, 造立兵仗․刀戟大弩, 威振天下.
중화서국 출판《사기》1964년,  (저본: 청 금릉서국본-1866년)
금릉서국에서는 집해단주본(명말 모씨급고각본?)에 색은과 정의를 합각한 것으로, 정식 명칭은 《사기집해색은정의합각본》이다. 이들은 여러 고본들을 살펴 일부 교정을 하였는데, 이 부분의 교정은 내가 보기에는 잘못된 것이다. 《용어하도》와의 원래 문장과는 일치하지만, 《사기정의》의 문장은 아니다. 주석으로 처리하는 해야만 그 시말을 알 수 있게 된다.


시대별 정리
銅頭鐵額, 食沙石子동두철액, 식사석자  -《용어하도》 원본. 당나라 이전

銅鐵額, 食沙동철액, 식사  - 당나라 장수절의《사기정의》 당나라 시기
銅鐵額, 食沙동철액, 식사  -《사기삼가주》 송원명시대

銅頭鐵額, 食沙동두철액, 식사  -《사기삼가주》 청 무영전본
銅頭鐵額, 食沙동두철액, 식사  - 가짜 <삼성기> 1960-1980년.


5. 결론
《사기삼가주》의 옛 판본(1200년-1700년)들을 보면, 가짜 <삼성기>의 저자(위작가)는 이것들은 본 적이 없고, 그가 본 것은 "청 무영전본(1739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원동중이라는 사람은 그럼 1700년대 이후의 사람이란 말인가? <세조실록>(1457년)의 기록은 무엇이란 말인가? 결론은 원동중의 <삼성기>는 후대의 위작이라는 것이다. 

이제 두 문장을 비교해 보자. 글자수는 완전히 똑같은데, 글자를 몇 개 바꾸어 놓은 것을 보면 가관이다.

가짜 <삼성기>가 베껴 먹은 《사기》.
黃帝攝政, 蚩尤兄弟八十一人, 並獸身人語, 銅頭鐵額, 食沙, 造五兵仗․刀戟弩, 威振天下. 청 무영전본《사기》1739년
軒轅攝政, 蚩尤兄弟八十一人, 並獸身人語, 銅頭鐵額, 食沙, 造五丘杖․刀戟弩, 威振天下.
환단고기 <삼성기> 1960-80년 사이에 위작.

黃帝황제 - 軒轅헌원(황제는 시호이며, 헌원은 이름임)
有  - 위치를 바꿈. 사기 고본이나 기타 어디에도 이런 문장은 없다.
仗장 - 杖장
兵병 - 丘구(병兵자를 구丘자로 잘못 베낌.)
大큰 대 - 太클 태


두 문장을 비교해 보면 한눈에 봐도 베낀 사실을 알 수 있다. 이 사실을 감추고 고본처럼 보이기 위함인지 비슷한 용어로 바꾸거나, 글자의 위치를 이동해 놓고 있다. 위작자들은 대부분 "통행본"을 보고 베끼는데, 그것을 이용하여 옛글로 위장하면 많은 문제점을 발생한다는 사실을 스스로 인지하지 못한다.

이런 후대의 통행본을 보고 엉터리로 베껴 놓고선 옛 기록이라고 하는 놈이나, 그걸 비서라고 찬양하는 놈들이나 천학비재이기는 마찬가지다. 이해할 수도 없고, 인지할 수도 없는 판본학이나 고증학까지는 기대하지 않겠다만, 최소한 본문과 주석이라도 구별하시고, 기초적인 한문이라도 배우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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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하 | 2008/03/26 15:46 | 변위학(辨僞學) | 트랙백 | 덧글(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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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야스페르츠 at 2008/03/26 16:03
아.. 감동의 눈물이.......... 고증학(?)의 위대함을 체험하고 갑니다.
Commented at 2008/03/26 16:12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소하 at 2008/03/26 16:13
야스페르츠/ 네 감사합니다.

초록볼/ 네. 지적 감사합니다.
Commented by 초록불 at 2008/03/26 17:57
하하... 비밀글이었습니다만...^^;;
Commented by 소하 at 2008/03/26 19:41
초록불/ 비밀글로 쓰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잘못된 점을 모르는 것이 부끄러운 것이지요..^^
Commented by 한단인 at 2008/03/26 20:30
어허.. 제대로 된 크로스 카운터로군요. 청나라 무영전본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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