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04월 06일
소신여서준小臣艅犀尊 - 상나라 제을

위에 보이는 금문은 “소신여서준小臣艅犀尊”이라 불리는 기물로, 통상 “소신여준小臣艅尊”으로 불리운다. 청나라 시절에 산동에서 발견된 것으로, 글자는 모두 4행 27자가 적혀있다. 시기는 은나라 제을이나 제신(은의 마지막 왕 주) 시대의 것이다. 은나라 왕이 동이東夷를 정벌하였는데, 여기에 소신 여가 참가하여 공을 세운 모양이다. 은왕은 소신 여를 치하하여 이것을 하사한 것으로 보인다.
小臣艅犀尊소신여서준(소신小臣 여艅의 코뿔소犀 준기尊器)
丁子(巳), 王省夔京, // 王易(錫)小臣艅夔貝.
정사丁巳일에 왕이 기경夔京을 시찰省하고, 왕이 소신여小臣艅에게 기패夔貝를 하사易하였다.
隹(唯)王來正(征)人方(東夷). 隹(唯) // 王十祀(年)又(有)五, 彡(肜)日.
왕이 인방人方(동이東夷)을 정벌하고 돌아왔다. 왕 십오년, 삼彡일(제사일).
(): 해석.
易: 역은 “상을 주다”라는 의미다.
<가제집고록>에는 명문의 앞글자를 따서 “정자준丁子尊”이라 하였는데, 현재 청동기 기물의 이름은 통상적으로 그 기물의 주인공 이름을 따서 짓는다. “정자준丁子尊”이라 칭하면 기물의 특징이 머릿속에 잘 떠오르지 않는다.
본인은 금문(청동기에 새긴 문자)에 대해서는 무지하며, 번역도 발로 해 버렸다. 어쨌든 명문이 있는 청동기 중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모공정”과 “대우정”일 것이다. 하지만 이 금문도 나름 유명한 것으로, 중국 고대사에서는 항상 빠짐없이 등장하는 단골메뉴다.
본인이 과문하지만 이 기물을 인상적으로 보았던 이유는 중국에서 년대를 기술하는 서법의 첫머리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세문헌 중 가장 오래된 《춘추》와 《죽서기년》과는 상당히 다르다는 점을 깨닫게 된다.《爾雅이아. 釋天석천》을 보면,
載, 歲也. 夏曰歲, 商曰祀, 周曰年, 唐虞曰載.
재載는 한해다. 하나라는 세歲, 상(은)나라는 사祀, 주나라는 년年, 당우 시대에는 재載라고 하였다.
은나라 사람들은 년도를 표기할 때는 “사祀”라고 하였는데 갑골문도 동일하다. 주나라 이후로는 서서히 “년年”자로 바뀐다. 또한 년도를 문장의 뒤에 기재하는 것도 인상적이다. 후대의 주나라 초기 청동기 《대우정大盂鼎》과 《소우정小盂鼎》의 첫머리와 뒤의 문장을 보면 《소신여준小臣艅尊》의 서법과 같음을 알 수 있는데,
《大盂鼎대우정》(약 BC970년경)
隹九月,王才宗周,令盂.... 9월에 왕이 종주에서 우에게 령을 내렸다...
.....
隹王廿又三祀. 왕 23년.
《小盂鼎소우정》(약 BC970년경)
隹八月既朢,辰才甲申.... 8월 기망 갑신일에...
.....
隹王廿又五祀. 왕 25년.
《曶鼎물정》(약 BC900년경)
隹王元年六月既朢,乙亥... 왕 원년 6월 기망 을해일에...
.....
隹王四月既生霸... 왕 4월 기생패...

이 “대우정”과 “소우정”은 서주 초기 강왕康王(주나라의 3번째 왕, BC970년경) 시대의 기물로, 청나라 때 함께 발견되었다. 주나라 초기의 기물이지만 년도를 여전히 “祀사”자로 적고 있는데, 《爾雅이아》의 설명과는 다르다. 《소우정小盂鼎》에는 달을 적은 후에 “既朢기망”이라고 쓴 것이 보인다.
《曶鼎물정》은 서주 중기(BC900년경)의 기물로, 이때에 비로소 년도를 “年년”자로 기재하고 있다. 또한 년도가 문장의 뒤에 있는 것이 아니라, 문장의 앞에 위치하고 있다. 달 뒤에는 “既朢기망”과 “既生霸기생패”라는 용어가 보인다.
갑골 4대가大家로 불리우며 “이중증거법”으로 유명한 왕국유王國維는 갑골문 뿐만 아니라 금문과 문헌학의 대가로써, 중국의 위대한 고증가의 한 사람으로 손꼽힌다. 왕국유의 저서들은 그의 호를 따서《觀堂集林관당집림》이라 불리우는데, 이 책의 첫머리에 있는 것이 바로 <生霸死霸考생패․사패고>다. 여기에서 왕국유는
餘覽古器物銘,而得古之所以名日者凡四:曰初吉,曰既生霸,曰既望,曰既死霸. 因悟古者蓋分一月之日爲四分:
고기물의 명문을 살펴보면, 예전에는 (1개월의) 날에 이름을 붙여서 모두 4개로 나누었는데, 초길初吉,기생패既生霸,기망既望,기사패既死霸라고 하였다. 옛 사람들이 한달의 날을 사분하였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다.
一曰初吉,謂自一日至七․八日也;二曰既生霸,謂自八․九日以降至十四․五日也;
三曰既望,謂十五․六日以後至二十二․三日;四曰既死霸,謂自二十三日以後至於晦也.
첫 번째가 초길初吉로 1일에서 7․8일까지다.
두 번째가 기생패既生霸로 8․9일에서 14․15일까지다.
세 번째가 기망既望으로 15․16일에서 22․23일까지다.
네 번째가 기사패既死霸로 23일에서 그뭄까지다.
亦即古代一月四分之術也. 다시 말하면 고대에 1개월을 사분하는 방법이다.
---《觀堂集林관당집림》<生霸死霸考생패사패고>王國維왕국유
초길初吉,기생패既生霸,기망既望,기사패既死霸. 이러한 용어들은 날짜를 기록하기 위해 주나라 사람들이 만들어낸 것임을 알 수 있다. 또 년도를 “祀사”로 기록하거나, 문장의 뒤에 두는 것도 초기의 금문에서 많이 볼 수 있다. 이런 서법만 살펴봐도 금문의 시대를 추정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금문을 보면 년도 뒤에 “춘하추동春夏秋冬”을 기록하는 것은 매우 늦게 나타난다. 《죽서기년》은 비록 위나라의 묘에서 발굴된 당대의 자료로 오제시기부터 기록하고 있지만, 금문의 서법을 사용하지 않고 있다. 《춘추》의 서법을 이용하고 있으므로, 우리는 이것이 서술된 시기가《춘추》보다 늦다는 것을 깨닫을 수 있다.
《春秋춘추》隱公元年은공 원년(BC 722년)
元年, 春, 王正月. 원년 봄 왕 정월
三月, 公及邾儀父盟于蔑. 3월 공이 주나라의 의보와 더불어 멸에서 맹약했다.
夏, 五月, 鄭伯克段于鄢. 여름 5월 정백이 단을 언에서 이겼다.
秋, 七月, 天王使宰咺來歸惠公․仲子之賵. 가을 7월 천왕이 재 훤을 보내어 혜공과 중자의 봉의를 주었다.
九月, 及宋人盟于宿. 9월 송나라 사람과 숙에서 맹약했다.
冬, 十有二月, 祭伯來. 겨울 12월 제백이 왔다.
公子益師卒. 공자 익사가 졸했다.
《竹書紀年죽서기년. 卷上》帝辛제신(은나라의 마지막 왕 주紂) 조.(주무왕이 은을 정복하는 시기)
五十二年庚寅,周始伐殷. 52년 경인에 주나라가 처음으로 은나라를 정벌하였다.
秋,周師次于鮮原. 가을 주나라의 군대가 선원에 주둔하였다.
冬十有二月,周師有事于上帝. 겨울 12월에 주나라의 군대가 상제에게 제사를 지냈다.
《竹書紀年죽서기년. 卷下》康王강왕(주나라의 3번째 왕) 조.(대우정, 소우정과 같은 시기)
二十六年秋九月己未,王陟. 26년 가을 9월 기미에 왕이 죽었다.
《尙書상서. 周書주서》<泰誓태서>(주무왕이 은을 정벌하는 시기)
惟十有三年春, 大會于孟津. 13년 봄에 맹진에서 크게 모였다.
가장 오래된 경전으로 존숭되었던 《상서》도 금문과 비교해보면, 비록 옛 문장의 편린이 존재하지만, 후대에 전해지면서 많은 부분이 개작되거나 위작되어 왔다. 위에서 서술한 년대를 표기하는 방법도 단지 일부분만이 금문과 유사하다. 또한《일주서》의 서법을 금문과 비교해 보면, 이것이 옛 문장의 성분을 갖추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현전하는《尙書상서. 周書주서》
<武成>(위고문상서) 五: 惟一月壬辰旁死魄
<召誥> 十四: 惟二月旣望越六日乙未
<顧命> 二十四: 惟四月哉生魄
선진시기의 문헌에 인용된 《상서》를 《상서실문》이라고 하는데, 옛부터 고증가들은 이것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했다. 그 중에서《한서》에 인용된 《상서》를 보면, 현전하는《상서》가 옛 모습과는 많이 다름을 깨닫게 된다.
《漢書한서. 律曆志율력지》에 인용된 《尙書상서》
<洪範>篇曰:惟十有三祀
<武成>篇:惟一月壬辰, 旁死霸, 若翌日癸巳
<武成>篇曰:粵若來三月, 旣死霸, 粵五日甲子
<武成>篇曰:惟四月旣旁生霸, 粵六日庚戌
<召誥>曰:惟二月旣望, 粵六日乙未
안사고의 주석: “霸,古魄字同. 패霸자는,예전에는 백魄자와 같았다.”
《逸周書일주서》(숫자는 편호)
世俘 三十七: 維一月丙午旁生魄. 時四月既旁生魄, 越六日, 庚戌
程典 十二: 維三月既生魄,
大開 二十二: 維王二月既生魄
柔武 二十六: 維王元祀一月既生魄
小開武 二十八: 維王二祀一月既生魄
大戒 五十: 維正月既生魄
諡法 五十四: 維三月既生魄
本典 五十七: 維四月既生魄
酆保 二十一: 維二十三祀庚子朔
大開武 二十七: 維王一祀二月
寶典 二十九: 維王三祀, 二月丙辰朔
酆謀 三十: 維王三祀
大匡 三十八: 惟十有三祀
文政 三十九: 惟十有三祀
武儆 四十五: 惟十有二祀四月
어떤 일을 계기로 이 글을 쓰게 되었는데, 사실 본인은 금문에 대해서는 무지하다. 어떤 사실의 연원(기원)을 쫒다 보면, 어쩔 수 없이 이 세계로 들어가야만 한다. 그래서 갑골문이나 금문을 들춰보면, 이게 글자인지 부호인지 영 감이 잡히지 않는다. 이것을 고석해낸 사람들이 같은 사람으로 보이지도 않을 정도다. 어쨌든 해석문을 봐도 아리송하기는 마찬가지다. 읽다가 중간 중간에 막히다 보면 한숨만 나오지만, 어쨌든 그 문장과 배경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내가 의문을 품었던 부분만을 이해해도 족하다.
되도록이면 쉽게 쓰려고 했지만, 이거라도 이해하셨다면 금문이라는 말에 덜컥 겁부터 먹지는 말기를 바란다. 그것이 외계인이 쓴 언어도 아니고 과거 사람들의 문자일 뿐이다. 차근차근 읽다 보면 금방 매료당한다.
# by | 2008/04/06 23:45 | 금문(金文)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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