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생초보를 보았나?

중국 상고사를 논하려면 필수적으로 봐야 하는 책이《逸周書일주서》다. 《汲塚周書급총주서》라고도 불리우는데, 우리나라의 상고사에서도 동이東夷와 관련해서 가끔 언급되곤 한다.

이것은 사실 과거에는 크게 주목을 받지는 못했다. 그럼에도 다행히 실전되지 않고 지금까지 전해져 오는데,  청나라 시절부터 고증과 연구작업이 본격적으로 진행되었다. 늦게 주목을 받아서인지 고증과 교감, 주석 작업을 총괄한 책은 나오지를 못했다. 근래에 들어서 비로소 종합적인 주석책인《일주서휘교집주逸周書匯校集注》(1995년)가 나오게 되었다. 
 
이책의 서문은 고고연구소의 이학근* 선생이 썼는데, 나는 이 글을 보면서 《일주서》가《급총주서》가 아님을 깨달았다. 이 서문을 보면서 과거에 내가《한서》의 기록을 보았던 기억이 떠올랐다. <예문지>에는,


《周書》七十一篇. 周史記.
師古曰:「劉向云『周時誥誓號令也, 蓋孔子所論百篇之餘也. 』今之存者四十五篇矣.」
《주서》71편. 주나라 역사의 기록이다. 
당나라의 안사고가 말하길:「한나라의 유향은『주나라 시대의 고서호령의 글이다. 공자가 백편의 (상서에서) 취하고 남은 것이다.』라고 하였다. 지금 남은 것은 45편이다.」


진나라 태강년간(280년 이후)에 발견된 죽간들과는 관련이 없는 것이다. 오해가 생겨난 원인은 후대 목록서들과 판본들의 서명書名에서《급총주서》라고 했기 때문이다.


《隋志수지》
《周書주서》十卷《汲冢書》,似仲尼刪書之餘. 《급총서》로 중니가 《상서(서경)》를 산정하고 남은 것이다.

《宋志송지》
《汲塚周書》十卷. 晉太康中,於汲郡得之。孔晁注
《급총주서》10권. 진나라 태강중에 급군에서 얻은 것이다. 공조가 주석을 달았다.


 사부총간에 들어있는 원나라 판본의 제목도 《급총주서》라고 적혀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예문지>에 71편이라고 분명히 적혀 있는데,  왜 나는 의심조차 못하고《급총주서》라고 생각했던 것일까? 역시 크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기 때문일까? 어쨌든 《일주서》를 《급총주서》라고 부르는 것은 잘못이다.



* 청나라의 진봉형은 안사고가 당시에 45편만이 남아 있었다는 점을 근거로, 급군에서 발견된 죽서들로 보충하여 《급총주서》라고 부르게 되었다는 가설을 세웠다. 하지만 이것은 년대나 당시의 발굴기록을 살펴보면 근거가 매우 미약하다.

* 이학근: 현대 중국의 대표적인 고문자 학자. 본래는 철학을 연구하였는데, 갑골 금문 죽서등의 고문자로 연구방향을 돌렸다.


*子明님! 블로그에 가보니 아무것도 클릭이 되지 않습니다. 혹시 막아논 것은 아닌지요? 

by 소하 | 2008/04/18 19:29 | 중국사(中國史)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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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shotokan at 2008/04/19 15:56
클릭되는게 몇 개 있긴 한데요...
Commented at 2008/04/20 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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