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단》과《규원》은 무협지1

惟呂命, 王享國百年耄, 荒度作刑, 以詰四方.
여후를 경으로 삼으실 때에 왕(주목왕)께서는 재위(享國)에 오른지 오래되어(百年) 연로(耄)하였다. 크게(荒) 헤아려(度) 형벌을 만드시니, 천하의(四方) (사람들에게) 경계토록(詰) 하였다.


* 목왕(976-922: 하상주 단대공정 보고): 주나라의 다섯번째 왕.

王曰:「若古有訓. 蚩尤作亂, 延及于平民, 罔不寇賊, 鴟義姦宄, 奪攘矯虔. 苗民弗用靈, 制以刑, 惟作五虐之刑曰法....
왕이 말하길: 「고대의 유훈에 치우가 처음 난을 일으키자 (그 사악함이) 백성에게까지 이르러, 약탈하고 해를 끼치며, 무분별하게 안팎으로 난을 일으키고, 강탈하고 속여서 강취하기에 이르렀다. 묘족 사람들은 정령을 사용하지 않고, 형벌로써 제재하고, 잔혹한 다섯 가지 형벌을 법률로 만들었다.....


唐石經本당석경본: 당唐 문종文宗 대화大和 7년(833)부터 개성開成 2년(837) 사이에 장안長安성 태학太學에 12경經을 새긴 석경.

 

* 규원사화. 태시기 - 북애자
《尙書. 呂刑》亦云「若古有訓, 蚩尤作亂」彼之畏威, 而世傳其訓, 亦甚明矣.
《상서. 여형》에서 또한「고대의 유훈에 치우가 처음 난을 일으키자」라고 한 것은 그 위엄을 두려워하여 그 교훈을 전하고자 함이 분명한 것이다.


* 환단고기. 신시본기 - 이유립
《尙書. 呂刑》亦云: 「若有古訓, 惟(오직)蚩尤作亂.」彼之畏威奪氣, 而世傳其訓以爲後人戒者亦甚矣.
또《상서(尙書) 여형(呂刑)》에서는 고훈(古訓)에 다만 치우가 난을 일으키다 라고만 적은 것은 그의 위엄이 무서워 기(氣)를 빼앗긴 탓이라고 하였는데 세상에 그의 훈(訓)을 전하는 까닭은 이로써 후인을 위하여 계명으로 삼자는 뜻도 역시 깊다.
--- 임승국번역


이 구절 뿐만 아니라 <신시본기>는 많은 부분을 <규원사화>에서 취했는데, 의미없이 글자수를 늘려 북애자의 문장보다도 훨씬 격이 떨어진다. 말이 늘어져 전하고자 하는 점이 불분명해지고, 구두점을 어디에 찍어야 하지도 난감하다. 

여기에서 <상서>의 본문도 제멋대로 고쳤으니, "옛 교훈에 오직 치우만이 난을 일으켰다"라는 뜻으로 새긴듯하다. 

물론 이것은 이유립은 <상서>를 본적이 없기 때문이고, 북애자는 <상서>를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임승국의 번역은 일본판을 이중 번역한 것에 지나지 않아 더욱 원뜻과 멀어졌다.

by 소하 | 2008/05/30 00:29 | 변위학(辨僞學) | 트랙백 | 핑백(1) | 덧글(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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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nked at 知不知尙矣 不知知病矣 : 《환.. at 2008/07/24 22:04

... . 속사하고 비사하는 것이 어지럽지 않다면, 《춘추》에 (조예가) 깊은 것이다. 속사屬辭: 말을 붙여본다. 비사比事: 사건을 비교하다.《환단고기》와《규원사화》는 무협지1. 클릭《환단고기》와《규원사화》는 무협지2. 클릭《규원사화》(이하 규원)今據《漢. 地理志》其墓在/東平郡/壽張縣/闞鄕(감향)/城中, 高五丈. ... more

Commented by 초록불 at 2008/05/30 09:11
오호...
Commented by shotokan at 2008/05/30 09:35
환국신민들의 갑주가 또 한 겹 벗겨졌군요.

뭐, 종이 갑옷이긴 합니다만.

글 잘 읽었읍니다.
Commented by 소하 at 2008/05/30 20:17
이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발전하는게 아니라 퇴보합니다.
Commented by 악질식민빠 at 2008/05/31 21:38
이유립이 인용한 사서나 경전을 제대로 봤을 것 같지는 않다는 의혹이 계속 들고 있는데, 소하훃이 이렇게 짚어주시니 확 눈이 뜨이는군요 *_*
Commented by 소하 at 2008/05/31 22:13
<신시본기> 이 부분을 보면 <규원사화>의 내용과 인용이 완전히 똑같아요..ㅎㅎ 글자 몇개만 틀리고, 완전히 베꼈더군요.
Commented by Shaw at 2008/08/18 10:52
저는 줄곧 여형편에서 치우가 마치 苗民의 두목처럼 나온다고 생각해 왔는데... (왜 하필 苗民이 남들에게까지 형벌을 휘두르느냐 하는 것도 그렇고) 새로 읽어보니 꼭 그런 것도 아니라는 느낌이 듭니다. 고대 전적에서 꼭 스토리라인을 짜맞춰야 하는지 의문도 들고... 소하님께서는 저기에서 苗와 치우의 관계가 어떠하다고 보시는지요?
Commented by 소하 at 2008/08/18 13:12
<여형>의 이 부분은 무분별한 형벌을 경계하는 문장으로, 과거 치우와 묘민의 무자비한 형벌을 전거로 들면서 교훈으로 삼고 있는 부부입니다. 즉 이 둘은 족종상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과거의 선례에 불과합니다.
Commented by Shaw at 2008/08/18 13:33
치우가 형벌을 내리는 이야기도 있습니까?
Commented by 소하 at 2008/08/18 14:03
아! 치우는 형벌이 아니죠. <여형>에서는 치우가 족장이 되자 백성들이 혼란하였다라는 것을 말하는 것이죠. 참고로 오형은 <한서 형법지>에 순임금(하나라 우?)이 처음 만들었다고 나옵니다.
Commented by Shaw at 2008/08/18 22:34
그렇군요. 구려와 묘가 엮이는 것 때문에 제가 선입견을 갖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여형편의 성립 연대는 보통 언제쯤으로 보고 있는지요?
Commented by 소하 at 2008/08/19 00:18
대체로 선왕 이후 춘추전국시대로 봅니다. 이것은 전세본을 그대로 해석한 것이지만, 후대의 연구를 보면 내용이 상당히 달라집니다. 맨 앞구절도 "여나라의 왕"으로 해석하여 "주나라 왕"은 없어집니다. 즉 "여후"가 아니라 "여왕"이 되는 것이죠. 여국의 여왕이 썼기 때문에 치우와 삼묘족이 나오는 것이라고도 합니다. 이것은 충분히 개연성이 있다고 생각됩니다. 주나라 왕실에서 섰다면 치우와 삼묘족의 이야기는 나오지 않았을 겁니다.
Commented by Shaw at 2008/08/19 00:35
오, 그런 해석이... 감사합니다.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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