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07월 12일
《춘추좌전春秋左傳》 - 성복城濮전투2.
春秋左傳춘추좌전 僖公二八年희공28년 (BC632년)
己巳(2일), 晉師陳于莘北, 胥臣以下軍之佐當陳. 蔡.
기사일己巳(2일)에 진晉의 군사師는 신莘의 북쪽北에 진陳영을 세우고, 서신胥臣(진대부晉大夫)은 하군下軍의之 부장佐으로서以 진陳. 채蔡의 군대(초나라 우군)를 감당하였다當.
子玉以若敖之六卒將中軍, 曰:「今日必無晉矣.」子西將左, 子上將右.
자옥子玉(성득신成得臣; 초경楚卿)은 약오若敖(자옥子玉의 조부)의之 육졸六卒들로以 구성된 중군의中軍 장군이將 되어:「오늘今日 반드시必 진나라晉 (군사를 모두) 없앨無 것이다矣.」라고 말하였다曰. 자서子西(투의신鬥宜申; 초대부楚大夫)는 좌군의左 장군이將 되고, 자상子上(투발鬥勃; 초대부楚大夫)은 우군의右 장군이將 되었다.
《春秋左傳注》: 莘北, 當卽城濮. 신의 북쪽은 성복이다.
육졸六卒
《春秋經傳集解》: 6卒은 6백명이다. 《春秋左傳注》: 1卒-30乘. 6卒-180乘.
(180x75=13,500명.)
胥臣蒙馬以虎皮, 先犯陳. 蔡. 陳. 蔡奔, 楚右師潰. 狐毛設二旆而退之.
서신胥臣은 호랑이虎 가죽을皮以 말에馬 씌우고蒙, 먼저先 진陳. 채蔡의 (군대를) 습격하였다犯. 진陳. 채蔡의 군사들이 달아나자奔, 초나라楚 우측의右 군대는師 무너졌다潰. 호모狐毛(진대부晉大夫)는 전군(前軍)旆 두二 (부대로) 그들을之(달아나는 초 우측 부대) 격퇴하였다退.
欒枝使輿曳柴而僞遁, 楚師馳之, 原軫. 郤溱以中軍公族橫擊之. 狐毛. 狐偃以上軍夾攻子西, 楚左師潰. 楚師敗績. 子玉收其卒而止, 故不敗.
난지欒枝(진대부晉大夫)는 전차로輿 하여금使 나무를柴 끌어서曳 (먼지를 내며) 거짓으로僞 퇴각遁하게 하니, 초나라楚 군사가師(초중군) 그들을之 추격하였다馳. 원진原軫(선진先軫; 진대부晉大夫)과 극진郤溱(진대부晉大夫)은 중군의中軍 공족公族으로以 그들의之(초중군) 측면을橫 공격하였다擊. 호모狐毛와 호언狐偃(진대부晉大夫)은 상군으로以上軍 자서의子西 군대를(초좌군) 협공하니夾攻, 초나라楚 좌측의左 군대는師 무너졌다潰. (이리하여) 초나라楚 군대는師 대패하였다敗績. 자옥은子玉 그의其 군사를卒(초중군) 수습하여收而 (추격을) 멈췄기止 때문에故 패배하지는敗 않았다不.
《春秋經傳集解》: 旆,大旗也. 패는 대기이다.
李善注《文選》: 殿,後軍也。旆,前軍也。전은 후군이다. 패는 전군이다.
【주의】狐毛設二旆而退之: “호모가 두 개의 대기를 들고 거짓으로 퇴각하였다.”라고 어거지로 해석되는 경우가 많다. 이것은 두예의 주석 때문으로 보인다. 이렇게 해석되면 전투상황의 앞뒤가 전혀 연결되지 않고, 간결하고 명쾌한 문장이 애매모호한 문장으로 변해버린다.
《春秋經傳集解》: 公族,公所率之軍。공족은 공이 모집한 군대다.
晉師三日館․穀, 及癸酉(6)而還. 甲午(27), 至于衡雍, 作王宮于踐土.
진나라晉 군대는師 3일을三日 (초나라 진영에서) 주둔하며館 군량을 먹고穀, 계유일癸酉(6일)에 돌아왔다而還. 갑오일甲午(27일)에 위옹에衡雍于(정나라 땅) 이르러至, 천토에于踐土 왕궁을王宮 지었다作.
《春秋經傳集解》: 館,舍也。食楚軍穀三日。관館은 주둔하는舍 것이다也. 삼일동안 초나라 군의 군량을 먹은 것이다.
鄕役之三月, 鄭伯如楚致其師. 爲楚師旣敗而懼, 使子人九行成于晉. 晉欒枝入盟鄭伯.
이 전역이 있기 3개월 전에鄕役之三月, 정백鄭伯(정문공鄭文公)은 초나라에楚 그의其 군사를師 보냈다致. 초나라의楚 군대가師 이미旣 패전하자敗 두려워하여而懼, 자인구子人九(정대부鄭大夫)를 진에于晉 사자로使 보내어 강화를 요청하였다行成(?). 진晉의 난지가欒枝 들어가서入 정백鄭伯과 회맹했다盟.
五月丙午(9일), 晉侯及鄭伯盟于衡雍. 丁未(10일), 獻楚俘于王:駟介百乘徒兵千. 鄭伯傅王, 用平禮也.
5월五月 병오일丙午(9일)에 진후와晉侯及 정백鄭伯이 위옹에서于衡雍 회맹했다盟. 정미일丁未(10일)에 왕(주양왕周襄王)에게王于 초나라楚 포로를俘 바쳤는데獻, 네 마리駟介 말이 끄는 전차 100백승百乘과 보병徒兵 1000명이었다千. 정백鄭伯을 왕王의 상(相)傅으로 삼아, 평왕平(주평왕周平王) (시기의) 예禮를 사용하였다用也.
《春秋經傳集解》: 鄕役之三月 - 城濮役之前三月。성복 전역의 3개월 전이다.
《春秋經傳集解》: 徒兵,步卒。傅,相也。도병은 보졸이다. 부는 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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己酉(12일), 王享醴, 命晉侯宥. 王命尹氏及王子虎. 內史叔興父策命晉侯爲侯伯, 賜之大輅之服․戎輅之服, 彤弓一, 彤矢壹佰, 玈弓矢千, 秬鬯一卣, 虎賁三百人, 曰:「王謂叔父, 『敬服王命, 以綏四國, 糾逖王慝. 』」
기유일己酉(12일)에 왕王(주양왕周襄王)은 향례享醴하여, 진후晉侯에게 유宥하도록 명하였다命. 왕이王 윤씨尹氏(주경周卿)와 왕자호(주경周卿)及王子虎 내사內史 숙흥부叔興父(주대부周大夫)에게 명하여命, 진후晉侯에게 책명策命을 내려 후백侯伯(제후의 우두머리)으로 삼았다爲. 대로의 의복大輅之服과 융노의 의복戎輅之服 단궁彤弓 한 개一, 단시彤矢 일백개壹佰 노궁시玈弓矢 천개千, 거창秬鬯 한병一卣, 호분虎賁(천자의 호위병사) 삼백명三百人을 하사하고賜: (주 양왕이) 말하길:「왕王이 숙부叔父(진문공晉文公)에게 이르노니謂, 『왕의王 명을命 공손히敬 복종하여服, 사방의 제후들을四國 편안케 하고以綏, 왕王에게 악한慝 (무리들을) 응징하고逖 다스리시오糾.』」
晉侯三辭, 從命, 曰:「重耳敢再拜稽首, 奉揚天子之丕顯休命.」受策以出. 出入三覲.
진후晉侯는 세三 차례 사양하고辭 명을命 받으면서從 말하길曰: 「중이重耳는 두 번 절하고再拜 머리를 조아려稽首, 천자의天子之 크고丕 밝으신顯 아름다운休 명령을命 봉행하겠습니다奉揚.」 책서를策 받아서受 나왔다出. 진문공은 나아가고出 들어가서入 천자를 세三 번 뵈었다覲.
# by | 2008/07/12 00:02 | 13경(經) | 트랙백 | 핑백(2) | 덧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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