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08월 12일
소신?궤小臣[言+速]簋 - 서주 강왕
1930년에 하남성河南省 급현汲縣에서 출토되었으며, 서주 3대 康王강왕(1020-996) 시대의 기물로, 명문은 모두 8행 64자다.
() - 어석語釋.
[] - 입력할 수 없는 글자. 예) 好=[女+子](좌우). 夯=[大*力](상하).
■ - 입력할 수 없는 글자.
【】행 번호.

【1】[虘+又]! 東尸(夷)大反, 百(伯)懋父
【2】以殷八師征東尸(夷). 隹(惟)
【3】十又一月, ■(遣)自[吅*人*克]師, 述(遂)
【4】東[言+速], 伐海眉(湄). [雨*于](于)氒(厥)復
【5】歸才(在)牧師. 百(伯)懋父承
【6】王令(命), 易(賜)師[辶+率](率)征自五
【7】[鹵+禺]貝. 小臣[言+速]蔑■(曆)眔
【8】易(賜)貝, 用乍(作)寶尊彝.
아! 동이東夷가 크게大 반란하여反, 백무부伯懋父가 은팔사殷八師로 동이東夷를 정벌하였다征.
11월에 [吅*人*克]師에서自 출발하여遣, 동쪽의東 [言+速]을 거쳐서遂, 해미海湄를 정벌하였다伐.
그들은厥(은팔사) 목사로在牧師 다시復 돌아왔다歸.
백무부伯懋父가 왕의王 명령을命 받아서承, (그가) 거느린率 군대는師 五[鹵+禺]로부터 (노획한) 재물을貝 하사받았다賜.
소신小臣 [言+速]도 眔(이넘의 정체는???) 치하蔑曆와 재물을貝 하사받았다賜. 이러한 연유로用 (이) 보배로운寶 준이를尊彝 만든다作.

海湄해미
오늘날의 황현. 즉 동이의 한 갈래인 래이萊夷를 정벌한 것으로 보인다.
백무부伯懋父
진몽가 - 제태공 여상.
양관, 곽말약 - 강백모康伯髦 - 髦(髡), 牟, 懋가 모두 통용.
대부분 백무부伯懋父를 위衛나라 강숙康叔(무왕의 동생)의 아들 강백康伯(시호) 모髦(이름)로 추정한다. 또한 백무부는 다른 금문들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등장한다.
《사기 위강숙세가》
康叔卒, 子康伯代立. 강숙康叔이 졸하자 아들 강백康伯이 대를 이어 즉위하였다.
【索隱】《系本》康伯名髡. 宋忠曰:「卽王孫牟也, 事周康王爲大夫.」
【사기색은】《계본(세본)》에서 말하길: 강백康伯의 이름은 곤髡이다. 송충이 말하길:「즉 왕손모王孫牟이며, 주 강왕康王을 섬겨 대부가 되었다.」
그들은厥
뒤에 백무부伯懋父의 이름이 나오는 것으로 보아 은팔사를 지칭하는 것으로 보인다.
[吅*人*克]師, [言+速](師; 추정), 牧師.
목사牧師는 목야를 말하는 것으로, 모두 은팔사殷八師의 명칭들로 보인다. 다른 금문에도 “-師”가 보인다.
* 서주의 군사제도
주나라에는 왕을 호위하는 금위병인 “호분虎賁”이 있었는데, 이들은 주나라 최고의 정예병이었다.《상서尚書》나 금문金文에서는 이들을 “호신虎臣”이라고 칭하고 있다.
서육사西六師(주육사周六師)는 종주宗周(장안지역) 부근에 있었던 군대로 주나라 서쪽의 방위를 담당하던 군대다.
은팔사殷八師(성주팔사成周八師)는 성주成周(낙양지역; 낙읍洛邑)를 중심으로 있었던 군대로, 옛 은나라 지역에 있었기 때문에 이렇게 불리었던 것으로 보인다. 주나라 동쪽의 방위를 담당했다.
서주 10대 왕인 厲王여왕(877-841)시대의 기물인 <禹鼎우정>을 보면 서육사西六師와 은팔사殷八師가 보이는데, 이러한 기록들은 서주 12대 270년간의 군사제도를 알 수 있는 중요한 기록들이다. 이 금문 이전에 주나라의 군사 제도를 서술한 가장 빠른 기록은 《주례周禮》였다.
<禹鼎우정>: 王廼(乃)命西六師․殷八師曰
왕은 이에 서육사와 은팔사들에게 명하여 말하시길
《주례 하관》: 制軍, 萬有二千五百人爲『軍』, 王六軍. 二千有五百人爲『師』. 師帥皆中大夫.
군대의 편제는 12,500명을 『1군軍』으로 삼는데, 왕(주나라 왕)에게는 6군이 있다.
2,500명은 『사師』로 삼는데, 사는 모두 중대부가 통솔한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주례周禮》의 기록을 참고로 서육사西六師를 천자 6군六軍에 대비하여, 1사師가 1군軍에 해당하는 것으로 인식했다. 이렇게 두 군대의 병력을 추산해보면 서육사西六師(6군軍)는 75,000 은팔사殷八師(8군軍)는 10만 명에 다다른다. 이러하다면 서주 초기에 이미 강력하고 체계적인 상비군이 존재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서양의 한 학자는 서주의 왕을 왕중왕, 즉 황제라고 이해하고, 주나라를 “서주 제국”이라고 지칭하기도 하였다. 기원전 10세기를 전후해서 중앙의 군대가 15만에 이른다면, 서주를 “제국”이나 “황제”라 부르는 것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주례》는 주나라 관직을 서술한 책으로, 후대 동아시아 6부 제도는 여기에서 기원한 것이다. 전하는 바에 따르면 주공周公 단이 편찬한 것이라고 하는데, 현재 이것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없다. 이것은 대략 전국시대에 편찬된 것으로, 주나라 후기인 동주 시대의 사실을 전하고 있을 뿐이며, 허황된 기록들도 상당수 존재한다.
이렇기 때문에 어떤 사람은 서육사西六師와 은팔사殷八師의 병력에 대해서 《주례》에 “사師 2,500명”을 기준으로 말하기도 한다.(서육사西六師는 15,000명 은팔사殷八師는 20,000명) 이것은 금문 기록을 전세문헌인 《주례》에 맞추려는 것으로, 오히려 서주의 군사제도를 이해하는데 방해만 될 뿐이다. 굳이 문헌과 금문을 일치시키려고 노력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금문에 보이는 서주의 전역戰役을 보면 병력 구성이 주왕실 군대의 독자적인 전역은 그다지 많지 않다. 여러 제후국과 부족들이 모인 연합군으로 구성되어, 서양의 로마 연합 같은 느낌이 든다. 서주제국이라 부르기에는 부적절하고, “서주 연합” 정도로 이해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이것은 중국 특유의 봉건제도로 이러한 체계가 300년 가까이 유지되었던 것이다.
또한 서육사西六師나 은팔사殷八師는 온전한 상비군이라 말하기도 힘든 면도 많다. 병력의 성격에 대해서도 서육사는 주나라의 민족이, 은팔사는 은나라 유민으로 구성되었다고 하는데, 이것은 더욱더 근거가 부족하다.
# by | 2008/08/12 21:46 | 금문(金文) | 트랙백 | 핑백(2) | 덧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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