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08월 23일
진장호陳璋壺 - 연나라
전국시대 연국燕國의 역사를 배우려고 한다면, 제일 먼저 국명부터 고찰해 봐야 한다. 한자는 여러 시대를 거치면서 변화되었고, 연燕나라의 “연燕”자 또한 그러하다. 청나라 말기에(아니면 민국초기) 편찬된 금문 서적에서 “연燕”자가 본래 연燕나라의 이름이 아님을 지적하였다. 그래서 1930년에 부사년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생각건대 연燕자는 지금 경전에 모두 연燕자로 쓰여 있는데, 금문에는 모두 언郾자로 되어 있다. 언후정․언후과․언왕검․언왕희과에는 모두 연燕자가 없다..... 경전에 모두 연燕자를 쓴 것은 한나라漢 사람들이 전사하면서 생긴 오류다. 연燕은 본래 언郾자로 쓰였으며, 지금의 하남성 언성郾城을 말하는 것이다.... 한나라漢 시대에 언현郾縣과 소릉현이 영천군과 여남군에 속하였으니, 지금의 언성현郾城縣이다.』
부사년은 연국燕國의 이름이 당시에는 “언郾”자를 사용했으며, 이는 곧 《한서 지리지》에 보이는 언현郾縣이라 인식하고, 연나라 초기의 위치를 현재의 언성현郾城縣으로 본 것이다. 현재 부사년의 글에서 취할 수 있는 것은 “연燕자가 금문에는 언郾자로 되어 있다”라는 것 밖에 없다. 그가 말하는 전사의 오류라든가, 언현연국설을 지금은 아무도 따르지 않는다. 근래의 연나라 연구서를 보면,
『진한秦漢 이래로 전래문헌 중에는 연나라燕國의 “연燕”자를 모두 “연燕”자로 썼다. 그러나 서주西周 초기의 청동기 명문 중에는 연나라燕國의 “연燕”자를 모두 “언匽”자로 썼으며. 전국戰國시대에는 또한 “읍邑”자 편방을 더하여 “언郾”이라고 하였다. 그래서 사람들은 “언匽”자가 “연燕”자의 본의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실제로 “언匽”자는 단지 “연燕”의 가차자假借字일 뿐이다.』
---《연조문화燕趙文化》<상나라 시대 자성의 연국과 주나라 초기 희성의 언국> 1995년
윗글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언匽 -> 언郾 -> 연燕
서주西周 전국戰國 한漢나라
이 논리는 연나라의 국명을 논할 때 자주 이용되는데, 내가 살펴본 바로는 실제 사실과는 조금 다르다. “진장호陳璋壺”라는 연나라의 청동 기물이 있는데, 명문은 모두 3행 29자로, 글자 두 개는 파손되어 인식이 불가능하다. 이 기물의 명문을 보면 다음과 같다.
隹(惟)主五年....陳璋內(入)伐匽(燕)․亳邦之隻(獲).
주군 5년(제齊 선왕 5년; BC 315년)[1]에..... 진장陳璋(제나라 장수)은 언나라匽(燕)와 박방亳邦으로 들어가 정벌하고 이것을 노획하였다.

연나라의 유물인데 명문을 보면 이상하게도 제나라의 왕과 장수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그 이유는 제나라 장수 진장陳璋이 연나라에서 약탈한 전리품에 글자를 새겨놓았기 때문이다. 전국시대로 접어들면서 연나라와 제나라는 견원지간이 되었는데, 약소한 연나라는 항상 제나라에 휘둘려야만 했다. 연나라 소왕(BC 311-279)의 즉위를 사마천은 이렇게 적고 있다.
나라가 파괴된 후에 소왕이 즉위하였다.
이 청동기를 보고 있으면 약소국이었던 연나라와 소공의 비애가 전해지는 듯하다. 이 “진장호陳璋壺”는 이상하게도 본래 주인의 손을 떠나는 것이 운명인지 현재 중국에는 없고, 미국의 필라델피아에 있는 한 대학에 소장되어 있다.
전국시대 중기中期에 속하는 청동기 “진장호陳璋壺” 명문에서 보는 것처럼, “연燕”나라의 이름이 “언匽”으로 새겨져 있다. “언匽 -> 언郾 -> 연燕”처럼 시대별로 규칙적인 법칙이 따로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1] 《사기》의 제나라 기년은 문제가 있는데, 진몽가는 자신의 편찬한《육국기년》에 의거하여 선왕 5년을 314년이라고 하였다. 315년은 양관의 기년에 의거한 것이다.
# by | 2008/08/23 20:56 | 금문(金文) | 트랙백 | 핑백(1)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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