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골천부경> 81자 노래. 옹옹옹~~~

     들어가며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기에 갑골 뼈는 용골이라 불리며 약재로 쓰였습니다. 그래서 지저분한 것보다는 깨끗한 것이 더욱 비싸게 거래됩니다. 왕의영에 의해 뼈에 새겨진 것이 문자라는 것이 밝혀지자, 그 후에는 이것이 더 높은 가격으로 팔려 나갔습니다. 그러자 여기에 발맞추어, 전문적으로 가짜를 만들어서 팔아먹는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20세기 초기에 만들어진 갑골학 저서에도 이런 가짜들이 섞여있습니다. 모두 이익만을 탐하던 위조자들 때문입니다. 

   소위 <갑골천부경>이라는 것을 위조임을 밝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과거에 잘못 해석했던 글자를 찾아내면 됩니다. 하지만 본래 <천부경>은 겨우 81자에 불과하고, 중복되는 것을 삭제하면 몇 글자 되지도 않습니다.

본문에 고문자 이미지가 너무 많아서 스캔해서 올립니다. 오탈자가 있어도 고치지 못하겠군요. 본문은 꼭 이미지를 클릭해서 보십시요. 링크는 여기를 클릭.

<曶鼎물정>해석. 
http://tinis74.egloos.com/1982668
탁본주소  http://www.shxw.com/lidai/2006/0724/content_9.html

   4) 마지막 4판은 1985년에 만들어졌는데, 용경은 83년에 죽었다. 제자들이 나머지를 완성하여 출판한 것이다.



결론.
   <갑골천부경>이 등장한 배경은 《환단고기》가 진서라는 증거를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상술한 바와 같이 잘못 해석된 글자를 이용하여, 근래에 만들어진 위조품이 확실합니다. <갑골천부경>은 이것만 기억하시면 되겠습니다. “옹옹옹~~~ 그래서 가짜” 옹자에 이응이 위 아래로 있으니 기억하기 쉽습니다. 어쨌든 저런 위조품을 가지고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들이나, 침묵하고 있는 학자들을 생각해보면 씁쓸하기도 합니다.


참고  http://tinis74.egloos.com/1979409

by 소하 | 2008/08/30 02:27 | 갑골문(甲骨文) | 트랙백 | 핑백(3) | 덧글(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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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쓰레기입니다!박대종이던가? 자신이 위조하고 자기가 고석했다고 한 것일까요? 사회가 발전해도 위조와 거짓말은 사라지지 않는군요. 링크 http://tinis74.egloos.com/1986495 ... 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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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라! 뭐야 이거? 그 천부경이 아닌가? 세로로 쓴 것이 아니어서 대략 난감. 아주 쌩쇼를 하세요!!!참고 갑골천부경 http://tinis74.egloos.com/1986495 ... more

Commented by Shaw at 2008/08/30 03:07
남의 틀린 답을 베끼는 것 만큼 컨닝의 확실한 증거인 것도 없지요. 좋은 정보 포스팅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Commented by 소하 at 2008/08/30 08:50
위조한 시간이 20여년 안팎으로 생각됩니다. <천부경>의 글자가 많지도 않은데 위조자의 오해와 오류 가 너무 많습니다. 갑골 숫자놀이도 박대종의 말대로 어린아이의 장난처럼 보입니다.^^
Commented by 耿君 at 2008/08/30 10:12
좋은 포스팅 감사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Commented by 소하 at 2008/08/30 22:05
네! 감사합니다. 쓰고 나니 설명이 부족한 부분이 보입니다. 이미지라서 수정할 수 없는 것이....
Commented by 악질식민빠 at 2008/08/30 12:14
이전의 논의보다 훨씬 이해하기가 쉽습니다. 역시 -_- b
Commented by 소하 at 2008/08/30 22:21
저도 고문자의 흐름을 이해하느라 시간이 좀 걸렸습니다. 저 스스로도 학습이 되었지만, 역시 문자학은 제 취향은 아니라는걸 다시 한번 깨달았습니다.
Commented by 야스페르츠 at 2008/08/30 17:17
오오!! 이렇게 명쾌한 증명을 보는 것은 항상 감동적입니다!! 쵝오!
Commented by 소하 at 2008/08/30 22:11
뭐! 그렇다고 감동까지...^^ 칭찬 감사합니다.
Commented at 2008/08/30 17:54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소하 at 2008/08/30 22:04
아닙니다.^^ 후한서집해(청나라 왕선겸)를 바탕으로 제가 덧붙인 겁니다...
Commented by Shaw at 2008/08/30 22:07
아... 후한서를 보았을때(주석이 같이 나오는 것들) 굳이 [집해] 라고 붙어 있지 않은 것들은 어떻습니까?
Commented by 소하 at 2008/08/30 22:25
<후한서집해>는 청나라 왕선겸이 제가의 주석과 자신의 견해를 첨가해서 만들었습니다. 이현의 주석이 붙은 <후한서>와 따로 통용됩니다. 물론 왕선겸 자신의 주석에서는 [집해]라고 말합니다.
Commented by Shaw at 2008/08/30 22:44
어느것이 누구의 주석인지는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판본에 대해 잘 몰라서 계속 질문하게 되네요. ^^;;;
Commented by 소하 at 2008/08/30 22:56
왕선겸이 [집해]에서 인용하는 부분은 서명이나 저자를 먼저 거론합니다. 이런 주석법은 고대부터 내려오던 전통이었습니다. 출처와 출전을 명확히 말하고 있는 것이죠. ^^
Commented by Shaw at 2008/08/31 02:07
으음... 이따금 저자가 거론되지 않은 상태로 나오는 것도 있는 듯 해서 말입니다. 예를 들면 동옥저조에서 개마대산에 관한 주석은 저자 서명이 붙어있지 않았습니다. 국사편찬위원회에 올라와 있는 것은 중화서국에서 나온 것이 대본인 것 같은데, 여기에서도 해당 주석의 저자 서명을 보지 못했습니다.
Commented by 소하 at 2008/08/31 08:57
서명이나 저자가 없는 것은 왕선겸 자신의 생각이나 주장입니다.^^ 중화서국본은 교감성과만을 받아들였는데, 혹시라도 재인용하면서 뺀 것인지 아닌지는 대조를 해봐야 정확히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Commented by Shaw at 2008/08/31 12:58
헉... 그렇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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