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한어1 사어詞語(어휘)의 개념.


   중국의 한어에서 “사어詞語”란 “어휘”를 말하는 것으로, “의미의 최소 단위”를 나타냅니다. 문자의 최소 단위인 “문자(한자)”와는 다른 의미이며, 말이나 문장에서 가장 기초가 되는 부분입니다. 예를 들어 어린아이가 엄마에게 “맘마” “응가”라는 어휘만 사용해도 의미가 전달되기에는 부족함이 없습니다. 완전한 문장을 구사하지 않더라도 어휘만으로도 뜻을 전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중국어와 한국어가 크게 다른 점은 중국어가 고립어라는 사실입니다. 고립어란 “품사”의 변화에 따라서 문자의 형태가 변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문자의 변화를 통해서 품사를 파악하는 것이 아니라, 문자의 위치에 따라서 품사나 의미를 결정하게 되는 것입니다.


大虎. 큰 호랑이.        大 - 형용사
虎大. 호랑이가 크다.  大 - 동사


   하지만 품사의 변화에만 한자의 모양이 변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발음이 변하거나, 의미(사詞)가 변하더라도(또는 확장되거나 축소) 글자(한자)의 형태는 변하지 않습니다. 한자의 형태가 변화를 일으키는 요인은 다른 곳에 있습니다. 현재 중국은 인민공화국이 들어서면서 간체를 사용하고 있는데, 그 목적은 한자를 간소화시켜 문맹률을 낮추는 것이지, 음이 변했다거나 의미가 변했기 때문은 아닙니다.

   현재 우리가 보는 한자의 형태는 과거와 거의 비슷하지만, “사어詞語(의미)”는 크게 변했습니다. 그래서 현재의 “형(형태), 음(발음), 의(훈. 의미)”로는 고대 중국어의 어휘를 알 수가 없을 뿐더러, 문장의 뜻을 새기기도 힘든 것입니다. 한자를 알게 되면 한문을 해독할 수 있다고 생각하거나, 이로 인하여 오역이 많이 생기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형태는 비록 같을지라도 시대가 변하면서 의미는 크게 달라졌습니다. 현재의 뜻과 고대의 뜻이 같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은 현재의 발음과 옛 발음이 같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일례로 《노자》의 한 구절을 보도록 합시다. 


自遺咎也. 자유구야. - 노자 9장. 

스스로自 허물을咎 남기게遺 되니,  (임채우)
스스로自 허물을咎 남긴다遺.         (이현주)
스스로自 허물을咎 남길遺 뿐이다.  (김용옥)
스스로自 허물이咎 될 뿐이니(遺?), (이경숙)



   “咎(허물 구)”자를 모두 현대의 대표적인 훈(의미)인 “허물”이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번역이 틀렸다고 크게 외치던 사람들의 번역들도 별로 다르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대표적인 오역에 해당하는 것으로 이렇게 번역되어야만 합니다.


나에게自 재앙으로咎 돌아오네遺. 


   허신의 《설문해자》를 보면 “咎, 災也.- 구咎는 재앙災이라는 뜻이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구咎”자를 후대에 파생된 의미(현재의 의미)인 “허물”로 인식하였기 때문에 뜻이 통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사어(어휘)”의 변화를 이해하지 못하고, 현대의 의미로 잘못 번역한 것입니다.

   번역이란 번역자가 원문을 이해하고, 번역문으로 독자를 이해시키는 일련의 과정입니다. 원문의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면 번역문도 모호해지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咎(허물 구)”라는 글자를 잘못 인식하게 되면, 노자 9장의 문장 전체가 이상해집니다. 왜냐하면 오역된 내용과 다른 구절들의 내용을 억지로 연결하려다 보니, 문장 전체가 어색함을 넘어서서 무엇을 전달하려는 것인지 번역자 자신도 이해하지 못하는 상황이 되기 때문입니다. “사어(어휘)”를 똑바로 인식하지 못하면 엉성한 번역을 하게 되고, 이어서 상관없는 엉뚱한 해석이나 장황한 설명만을 늘어놓게 되는 것입니다. 제 생각으로는 번역자 자신이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 인지조차 못하는 것 같습니다.

by 소하 | 2009/04/06 23:17 | 고대한어 | 트랙백(2) | 덧글(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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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바로바로의 중얼중얼 at 2009/04/07 01:41

제목 : 고문해석의 곤란함. - 自遺咎也
自遺咎也. 자유구야. - 노자 9장. 스스로自 허물을咎 남기게遺 되니, (임채우) 스스로自 허물을咎 남긴다遺. (이현주) 스스로自 허물을咎 남길遺 뿐이다. (김용옥) 스스로自 허물이咎 될 뿐이니(遺?), (이경숙) “咎(허물 구)”자를 모두 현대의 대표적인 훈(의미)인 “허물”이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번역이 틀렸다고 크게 외치던 사람들의 번역들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대표적인 오역에 해당하는 것으로 이렇게 번역되......more

Tracked from 바로바로의 중얼중얼 at 2009/04/07 18:45

제목 : 군서치요를 따른다고 하여도...
소하님이 제대로 생각을 말해주시거나 혹은 실수한 것이라고 하실 줄 알았는데, 군서치요를 기준으로 해석한 것이라고 하시는군요. 그렇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 안타깝군요. 1) 군서치요 자체의 문제 일단 군서치요 자체의 해석문제를 생각해보겠습니다. 언급하신 군서치요를 직접 찾아보았습니다. 作“還自遗咎” 그런데 소하님은 해석을 해석을 "나에게自 재앙으로咎 돌아오네遺. "라고 하셨습니다. 만약 잘못 쓰신 것이라고 하여서, "나에게自.....more

Commented by 쇼가센세 at 2009/04/06 23:49
이경숙의 번역이야 말할 가치도 없지만 다른 번역에서도 예외없이 咎를 '허물'로 번역하다니 참 허탈하군요. 한대까지의 용례나 기존의 노자 주석서를 조금만 주의깊게 보면 저런 실수 하지 않을 것 같은데 말입니다.
Commented by 초록불 at 2009/04/06 23:56
그렇군요. 이런 걸 보면 얼마나 오역이 많을지 아찔해집니다. 저 자신도...
Commented by 야스페르츠 at 2009/04/07 00:48
흠... 고대 한어라는 것은 어느 정도 시기까지를 말하는 건가요? 선진시기인지 한대를 말하는 것인지..
Commented by 소하 at 2009/04/07 04:55
쇼가센세/ 그러한 기본적인 것조차 살피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초록볼/ 앞으로 많이 아찔해지실 겁니다.

야스페르츠/ 현대 중국어 이전을 말하는 것입니다.
Commented by Esperos at 2009/04/07 08:44
현대 중국어 이전을 모두 고대라고 하기엔 좀 이상하지 않을까요? 고대라고 하면 중세나 근대 같은 시대구분을 금방 연상할 텐데요. 그냥 '옛 중국어'라고 하는 편이 나을 듯합니다.
Commented by 소하 at 2009/04/07 12:57
사실 훈고의 시대를 구분하는 것은 매우 어렵습니다. 각 글자마다 의미가 확장 축소되거나 변형된 원인과 시기가 모두 다르니까요. 그리고 실제로 "고대한어"라고 지칭하기도 합니다.
Commented by 耿君 at 2009/04/07 10:21
트랙백 달아주신 분의 지적처럼 遺에 돌아오다라는 의미가 있는 건지 의문이 드네요.
Commented by 소하 at 2009/04/07 12:52
<군서치요>의 해석이 타당하다고 생각되어 의역한 것입니다. <노자>는 성조와 음운(상고음)을 다룰때 전체적으로 거론할 생각으로 번잡함을 피했던 것인데, 한 구절이지만 해석에 대해서 혼동할 수 있겠군요.
Commented by 소하 at 2009/04/07 20:49
바로바로님/ 본문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번역이란 번역자가 원문을 이해하고, 이어서 번역문으로 독자(번역자도 포함)를 이해시키는 과정입니다. "자유구야"는 백서 을본을 기준으로 한 것이며, 죽간본 또한 같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치요>를 의거하여 해석한 이유는 문장의 뜻이 더 명확하기에 "의역"을 해 놓았던 것입니다. 판본 문제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것입니다. 조금 더 깊이 바라보시길 바랄 뿐입니다. 이 포스트의 주제는 "사어의 개념"을 말하는 것으로, 주제와 관련없는 부분은 일단 넘어가 번잡함을 피하려고 했습니다. 이전에 번역해 놓은 것을 그대로 사용하여 충분한 설명이 없었던 점은 인정합니다. 노자의 문장에 대해서는 이후의 포스트에서 좀 더 자세하게 쓸 것입니다.
Commented by 노바당 at 2009/07/11 12:56
정말 어이없는 생각입니다. 답답해서 몇 자 적습니다.

설문해자에는 요즘 한자 사전같이 여러가지 의미로 쓰이는 한자의 뜻이 다양하게 실려있는 것이 아니라 대표적인 뜻이나, 기존에 그 뜻을 알고 있을거라고 생각되는 유사한 의미의 한자 한가지 만 실어 놓고 약간의 설명을 덧붙인 것입니다.

예를 들어 '허물 구' 자는 아래와 같이 설명되어 있습니다. 이게 설문해자에 실려있는 '구' 자에 대한 설면의 전부입니다.

구(咎 자의 소전체), 災也. 從各, 從人. 各者, 相違也. 其久切.
('종' 자는 '사람 인' 자가 양옆으로 쓰여 있는 요즘의 간체자 모양임)

맨 앞에 표제어인 '구' 자가 소전체로 쓰여 있고, 그 다음에 육서(六書/ 상형, 지사, 형성, 회의, 전주, 가차) 중 어디에 해당되는가가 쓰여 있습니다. '구' 자는 '각' 자와 '인' 자의 뜻을 모은 회의자입니다. '각자, 상위야'가 그 조자(造字) 상의 의미입니다.
그리고 '기구야'는 고대 중국식의 발음 표기법입니다. '기'자의 자음과 '구' 자의 모음을 모아 발음합니다.

'구(구)' 자는 허신(후한, 30~124)이 <설문해자>를 지었을 때도 여러가지 의미로 쓰였습니다. <설문해자 주>를 쓴 단옥재(누군지 모르면 할 수 없고)의 주에도 고대 서적들에서 여러가지 의미의 에를 들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석고>에는 '구, 병(病)야.'로, <시경/ 소아/ 벌목> 전에는 '구, 과(過)야"로 되어 있습니다. 이 '과' 자의 뜻이 '허물'입니다. <시경>은 춘추시대 이전의 기록입니다. 이분 말대로 '허물'이라는 뜻이 후대에 생긴 것이 아닙니다. 그 외에 '구, 오(惡)야.', '구, 앙(殃)야.'로 주가 되어 있는 책도 있습니다.

참고로 중국에서 나온 <왕력고한어자전>(왕력이 누군지 모르면 할 수 없고)에서 는 이렇게 설명되어 있습니다. 다 베껴 쓸 수 없으니 간단히 적습니다.

1)재앙(災殃); <서, 대우모>의 예
2)과실(過失), 죄과(罪過): <시, 소아, 벌목>에 대한 <모전>의 예 등, <논어, 팔일>의 예
3)인명; 순임금의 신하
등등

위 글을 쓰신 분은 한자에 대해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분입니다. 그것도 자기만 그러면 어쩔 수 없는데 멀쩡한 남의 번역을 비난하면서 잘못된 자기 주장을 너무 심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게 바로 <노자>의 '부지지병(不知知病)'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내용은 한자 전문가가 아니라도 상식적으로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우연히 '고대 한어'라는 제목을 보고 찾아 왔다가 황당한 경험을 합니다.

다음의 내용이 흥미진진합니다.


Commented by 노바당 at 2009/07/11 13:18
혹 위 댓글 중의 초록불님이 보시면 제 글을 한번 읽어 보십시요.

저는 유사(의사?)역사학에 대한 초록불님의 비판을 잘 보고 있습니다.

님같이 여러 방면의 지식을 가지신 분이 위와 같은 단순한 주장에 그런 코멘트를 남기셨다는 게 믿어지지 않습니다.

한문의 오역이야 항상 조심해야 하지만 위 글 쓴 분이 말하는 이유 때문은 아닙니다.

저 역시 분야는 다르지만 사이비 퇴치에 약간의 힘을 보태고 있습니다.


paxkonet.com->노자를 웃긴 짜집기->노자 제대로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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