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07월 14일
《노자도덕경》9장 (5)
후회가 밀려옵니다. “소인”을 상대해봐야 아무런 득이 없음을 알면서도, 말을 섞었으니 말입니다. 굳이 남의 허물을 들추어낼 마음은 없었는데, 작은 지식을 가지고 계속 무례한 언사로 남의 블로그에서 “분탕질”을 해대니, 대응을 안할 수가 없겠군요.
«노자»9장의 번역에 대해서 보충하려 합니다. 앞선 포스트들은 단순한 주석의 인용이 아니라, “왜 그렇게 번역되어야만 하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이해를 못하는 사람들이 있으니, 그 “전고”에 대해서 간단히 짚어보겠습니다.
貴富而驕, 自遺咎也. 부귀와 교만함은 나에게 재앙으로 돌아오네. - «노자»9장.
고대
«하상공장구» 주석(번역).
必被禍患也. 반드시必 화환(禍患-재앙과 환란. 즉 “咎”자의 번역이다)을 당하게被 된다也.
«노자상이주» 주석(번역). - 돈황본.
秉權富貴而驕世, 即有咎也. 권력을 잡아 부귀를 추구하고 교만하면 재앙이[咎] 있을 것이다.
현대(중화민국 이후)
주겸지 주석. «노자교석»
“구咎”의 의미를 «설문해자»를 인용하여 설명.(«說文»: 咎, 災也. 구咎는 재앙災이라는 뜻이다.)
장묵생 번역. «노자장구신역»
是自取罪禍. 스스로 죄화(罪禍)을 받는다.
* 죄화(罪禍): 죄 값으로 얻는 재앙. 환란.
진고응 번역.«노자금주금역과 평개»
自取禍患. 스스로 재앙[禍患화환]을 얻는다.
*화환(禍患): 재앙과 환란. («하상공장구»를 따르고 있다.)
장억 번역. «노자백화금역»
自己招災. 자신에게自己 재앙을災 초래한다招.
풍달보 번역. «노자역주»
自己會招來禍害. 자신에게 재해[禍害화해]를 초래할 것이다.
“노바당”님의 “이경숙 비판”을 보니 스스로 진고응 선생의 «노자금주금역과 평개»로 공부를 했다고 하더군요. 진고응 선생의 번역한 “재앙과 환란[禍患화환]”은 «하상공장구»를 따르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알고 있었다면 과시욕이 강한 “노바당”님이 그것을 드러내지 못해서 안달이 났을텐데요. 무얼 알아야 면장이라도 하겠지요. 고작해야 “단옥재(누군지 모르면 할 수 없고)”라는 말을 보고 실소를 금할 수가 없습니다. 언제부터 단옥재를 알고 있다는 것이 그렇게도 대단한 일이 되었던가요?
결국 진고응 선생의 저작으로 공부했다는 것은 “위선”이고, 번역본을 보고선 스스로 그럴듯한 “포장”을 한 것이겠네요. 진고응은 고사하고 «노자»의 가장 기본적인 텍스트인 “왕필주”와 “하상공장구”를 모르니 그렇게 어이없을 수 밖에요.
“분탕질”이 아무데서나 통한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남을 비판하기 전에 자신부터 돌아보십시오. 그리고 “음운학”은 «노자»를 이해하는데 매우 필수적인 요소입니다. 이것이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아는만큼 보이는 법이랍니다.(이것에 대해서는 작성중이니, 배울 생각이 있다면 들러주세요^^)
知者不言, 言者不知. - «노자» 54장
(학문의 어려움을) 아는 사람은 (함부로) 말하지 아니하고, (함부로) 말하는 자는 (학문의 어려움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이말은 위선과 독선 그리고 아집과 과문함으로 둘러싸인 “노바당”님을 비추는 말이겠네요. “노바당”님이 말하는 전문가란게 대체 누구인지 궁금하다.
# by | 2009/07/14 15:26 | 노자(老子) 도가(道家) | 트랙백 | 덧글(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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咎의 설문해자를 보니
"災也。从人从各。各者,相違也。其久切"
www.zdic.net에선
● 咎
jiù ㄐㄧㄡˋ
◎ 过失,罪过:~戾。负~。以彰其~。
◎ 怪罪,处分:既往不~。~由自取(遭受责备、惩处或祸害是自己造成的)。
◎ 灾祸:休~(吉凶)。
◎ 怨仇:与臣有~。
그런데 災를 현대 한국어의 재앙으로 번역하는 것도 역시나 2천년을 뛰어넘는 시간이 있어서 헷갈리긴 합니다-_-; 고문 번역은 정말 어려운 작업인듯 합니다. 설문해자에선 災를 天火也로 해놓은 모양인데, 하늘에서 내리는 벼락불인가...
여기는 글복사가 금지되어 있어서 일일이 원글을 써서 비판하지 못하였습니다.
원글을 복사할 수 있게 해 주시오.
그리고 한글에서 글을 작성하여 붙이기를 하지도 못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런 거 풀어 놓고 얘기 해 봅시다.
공평하게...
댓글다는 데에다 글쓰기 어렵습니다.
저는 이런 글에 댓글달러 다니는 사람 아닙니다.
그런데 말도 되지 않는 글(이건 제가 증명할 일이고)을 써 놓고 다른 번역자들을 똥개 취급하느 게 하도 같잖아서 참견하게 된겁니다.
<노자>에서 '자유기구'의 구(咎) 자는 '나쁜 일'이라는 일반적 의미로 '허물'이든 '과실'이든, 중국 말로 '화'든 '환'이든 번역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스스로 자' 자는 그 '허물'이 자기가 자초한 것이라는, 또는 저절로, 당연히 (나쁜 결과가 오게 된다)라는 의미입니다.
이 분은 글에서 '자' 자의 원 뜻이 '~으로부터'(from)라고 해 놓고, 번역에서는 '자기에게'(to)라고 거꾸로 해석을 하는데 다 잘못된 것입니다.
그래서 중국학자들 번역을 우리말로 번역할 때 '자기에게'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 '자기에게 초래한다'는 표현이 말이 됩니까? '자기가 초래하는 것'이지...
그런 걸 한자말로 자초한다고 하는겁니다.(별 걸 다 가르치네...)
그리고 내가 진고응 선생의 책으로 공부했으면 진선생 꼬붕이 되서 그 말을 다 따릅니까?
그런 유치한 소리하지 마시고 '구' 자를 꼭 재앙으로 번역해야 하는지, '유'자가 돌아오다로 해석해야 하는지, '자' 자를 '자기에게'라고 해석해야 하는지 만 따집시다.
이 댓글쓰는 난에는 장문의 글쓰기가 어려우니 원 글(고대한어 1,2)과 이글을 paxkonet.com의 노자제대로 읽기에 그대로 옮겨 주십시요.
한줄 한줄 비판해 드리겠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시면 이걸로 접습니다.
그리고 내가 할 일이 없어서 되지도 않은 글에다 분탕질을 합니까?
당신이 하는 건 욕입니다.
'꼴도 아닌게 잘난 척하긴, '말귀도 못알아듣는 멍청아' 이런 게 다 욕 아닙니까?
한자 몇자 안다고 젊잖은 척하시긴....
'부귀이교'의 번역이 '부귀와 교만함은'이라니 상상불허입니다.
이건 '부와 귀함이 있으면서 교만하면'이라는 문장입니다.
그리고 '부귀와 교만함은 나에게 재앙으로 돌아오네'라는 글이 한국 말 맞습니까?
<노자>에서 '부귀'를 반대(경고)하는 것이 아닙니다.
'부귀'가 있으면서 교만한 것을 반대하는 것입니다.
이 둘은 엄연히, 아니 완전히 다른 것입니다.
첫 번째로 9장 전체의 문맥으로 볼 때 그러합니다.
두 번째로 허사 “而”를 “가而나 -> 가와 나”로 본 것입니다. 이렇게 해석함이 타당함은 “곽점본”에 의해서 증명이 되기도 하였습니다.(貴富驕)
기존의 번역본은 잊어버리시고 참고만 하십시오. 노자에 애정이 많으신 것 같습니다. 그 열정을 비판보다는 자신의 학문을 정밀하게 하는데 쏟아부으면 좋으실 것 같습니다.
저 학문하는 거 아닙니다. <노자> 읽는 것은 바둑, 당구같은 제 오랜 취미입니다. 그래서 제 닉네임이 노바당입니다. 그래도 아무리 취미라지만 수십년 하다 보면 남의 글이나 게임 감상하는 눈이 생깁니다.
여기선 다른 건 치우고 '부귀이교(富貴而驕)'에 대해서만 얘기해 봅시다.
님은 '부귀이교'를 '부귀와 교만함은'이라 하셨는데 이런 해석은 '부'와 '귀', 그리고 '교'를 모두 명사로 보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한문에서 하나의 글자가 동사로도, 명사로도 쓰일 수 있다는 것은 상식입니다.(품사의 활용) 여기서 '부, 귀, 교'는 모두 동사로 읽어야합니다.
님 말대로 명사라면 '부귀이교'가 아니라 '줄 여(與)' 자를 써서 '부귀여교(富貴與驕)'가 됩니다. <노자> 35장 '악여이', 44장의 '명여신', '득여망' 등 여러 예가 있습니다. 그리고 통행본 <노자>에는 '말이을 이' 자가 120회 정도 나오는데 대부분 접속사로 쓴 것이고, 님이 말하는 것같은 경우(명사+ 여+ 명사)는 한 군데도 없습니다. 말이 안되기 때문입니다.
님은 한문의 어떤 분야의 전문가인걸로 생각됩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한문의 모든 분야에 전문가연하실 필요도 없고 그럴 수도 없습니다. '부귀이교'하면 한문읽는 사람은 당연히 공자의 말이 생각날 겁니다.
<논어/학이> 자공왈, "빈이무첨, 부이무교(富而無驕), 여하?" 자왈, "가야. 미약빈이락, 부이호례자야."
저는 이렇게 해석합니다. "자공이 묻기를 '가난하면서도 아첨하지 않고, 부유하면서도 교만하지 않으면 어떻습니까?' 공자 대답이 '괜찮다. 그러나 가난하면서도 즐길 줄 알고, 부유하면서도 예를 좋아하느니만 못하다'"
'부귀이교'나 '부이무교'나 구조는 똑 같습니다. '부이무교'도 님 말씀대로하면 '부'와 '교만하지 않음'일텐데 게속 그렇게 주장하실 수 있겠습니까? 공자나 노자나 '부유하면서 교만한 것'을 경계하는 것입니다. 공자의 경우 '호례'를 덧 붙였지만... '부이호례자야'도 한번 해석해 보십시요. 님의 해석이 궁금핮니다.
<노자> 9장은 '지나치지 말라, 그칠 줄 알아라(지지 知止)'는 일관된 주제를 말하는 장입니다. '부귀이교'는 문법상으로도 그렇지만 <노자> 9장 내에서의 의미도 '부'와 '귀'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의 지나친 과시를 경계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곽점 <노자>를 언급하셨는데 문물출판사간 <곽점초묘죽간> 영인본에서 확인해 보니 님 말씀대로 '귀복교(貴福驕)'로 판별해 놓았군요. 그러나 이 세 글자가 붙어 있다고 해서 'and' 로 연결 될 수 있는 동일한 명사가 아닙니다. 한문에서 운을 맞추거나 여러가지 이유로 허사인 접속사를 생략하거나 더하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한 것입니다. 이것은 님의 말의 증거가 될 수 없습니다.
사람들 출입이 잦아 글쓰기 어렵군요. 일단 올리고 추가합니다.
제가 언제 소하님께 뭘 물어봤다고 '노바당의 의문' 운운합니까?
그리고 글을 보면 그 주제(여기서는 '부귀이교')에 대해서 답변을 하거나 비판을 해야지 왜 딴소리합니까? 그리고 하상공, 진고응 들먹이면서 '재앙'이 어쩌고 하면서 논점을 흐리는 건 뭡니까? 걱정 안해 주셔도 그런 책 정도는 다 넘어간지 오랩니다. 그리고 그런 책들이 님의 말을 보증해 주는 것이 아닙니다.
봅시다. 내가 언제 '재앙'이라는 번역에 대해 잘못됐다고 말했습니까? 님이 '구'자의 번역으로 '허물(과/ 過)'이라고 한 것은 다 틀렸다는 데에 대한 비판을 한겁니다.
앞에서도 얘기했지만 '구' 자의 번역으로 정도 차이가 있지만 '나쁜 일, 잘못된 결과'라는 의미의 번역이면 되는 것입니다.(過, 禍, 患, 惡, 病, 殆 등) 그리고 아무리 설문해자에 '구',재(災)'야 '라고 되어 있어도 <노자> 9장에서는 어울리지 않습니다. '재' 자의 원뜻이 그 글자 모양에서도 알 수 있듯이 자연재해라는 의미가 강하고, 개인적 불행(화)라는 의미는 후에 파생된 것입니다. 이렇게 말한다고 해서 내가 '구'자를 '재' 자로 해석하면 안 된다고 말하는겁니까?
내가 님 말대로 격분(?)했다면 님의 그 무지하면서도 안하무인격의 건방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내가 다 참견하지는 않습니다. 님 블로그에 와본것은 미디어몹의 움베르토님의 즐겨찾기에 '노자와 역사'라는 항목이 있어서였고(왜 즐겨찾기에 있느지 도저히 이해 안감), 여기와보니 되지도 않은 글에 초록불님의 긍정적인 코멘트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글도 님 때문에 쓰는 거 아닙니다. 님은 포기했습니다.
소하 번역: 부귀와 교만함은 나에게 재앙으로 돌아온다.
노바당 번역: 돈많고, 신분이 높으면서 교만하면 자연히 허물을 남기게 된다.
이 번역 두가지는 비슷한 것 같지만 천양지차입니다. 저는 부귀가 잘못이 아니라 부귀하면서 교만한 것이 잘못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소하님은 부귀와 교만함 모두 잘못된 것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런 제 말이 틀립니까? 그러나 <노자>는 부귀와 권력을 부정하는 게 아닙니다. 그것의 잘못된 사용과 자기 과시, 지나침을 경계하는 것입니다.
소하님은 이 구절을 보면서 '부자가 천국에 가는 것은 낙타(밧줄)가 바늘구멍에 들어 가는 것과 같다'는 예수의 말을 연상했을 줄 모릅니다. 그러나 <노자>는 예수와 다릅니다.
<노자>에는 해석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구절, 아니 <노자> 9장 전체는 의미로나, 문법적으로도 이해하기 어려운 장이 아닙니다.
<노자> 9장의 마지막 구절은 이렇습니다.
공수신퇴, 천지도. 功遂身退, 天之道.
노바당 번역(직역): 공이 이루어지면 몸이 물러나는 것은 하늘의 길이다.
이 문장은 '부귀이교, 자유기구'를 포함한 9장의 앞 구절을 일반화 한 것입니다. '부귀'는 '공이 이루어진 것', '신퇴'는 '교만하지 않는 것'입니다. <노자>가 '공을 이루는 것'을 부정하는 게 아닙니다. 물론 여기의 '신퇴'는 은퇴하여 시골가서 사는 것(은둔)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가진 자의 지나친 자기 확대와 과시를 경계하는 것입니다.
미디어몹의 움베르토님을 혹 아신다면 이제까지의 글을 보여주시고 평가를 받아 보십시요. 제가 개인적으로 아는 분은 아니지만 그냥 누구 편들 사람이 아니라는 것은 압니다.
자, 이제 마칩니다. 부탁드리고 싶은 것은 이제까지 쓰신 글과 제 댓을을 한번 더 읽어 보시라는겁니다. 그리고 남 가르칠 생각 접으시고, 어려운 음운학, 문자학이니 하는 것 접으시고, 고전의 좋은 번역책 찾아서 여러 번 읽으십시요.
스스로 비판할 능력이 닿지 않음을 깨달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것을 깨닫지 못한다면 발전은 없겠지요. "공이 이루어지면 몸이 물러나는 것은 하늘의 길이다"를 직역이라고 하시는 모습에 그냥 웃음만 짓습니다. 밑의 글은 제 블로그의 정면에 걸어놓은 말입니다.
사마광이 학생들을 보고 한탄한 내용.
--- 신진후생들은 옳고 그름을 알지 못하고, 구전(소문)만 듣고서 따라함이 하나의 풍조를 이루었다.
《주역》을 읽고도 『괘』와 『효』를 구분하지 못하면서 <십익>은 공자의 말이 아니라고 한다. 《예》를 읽고도 그 편수도 모르면서 <주관>은 전국시대에 지은 책이라 한다. 《시경》을 읽고도 <주남>과 <소남>도 모르면서 모시와 정현의 주는 장구지학이라고 한다. 《춘추》를 읽고도 12공도 모르면서,《삼전》은 모두 묶어서 고각에나 보존시켜야 할 책이라고 한다.
주소자(고증가)들을 썩은 유학자라 하고, 천착(이치에 맞지 않는 말)하고 억측하는 사람들을 정의라고 일컫는다.
이런 말은 추가해도 이상하지 않겠습니다. "<노자>를 읽고도 <하상장구>도 모르면서~~~~~"
정말 아는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있다면 글 한번 봐달라고 하세요.
정말 걱정되서 그럽니다.
안녕히...
ps/ 그래도 혹, 후에 제 정신차리셨을지 몰라 가끔 들러 보겠습니다.
'소인', '분탕질', '과시욕', '위선', '독선', '아집', 과문함'
이게 훌륭하신 선생님께 댓글 좀 버릇없이 달았다고 저를 판단하여 붙여 주신 훌륭한 말씀입니다.
기왕 제 글을 읽으신 통에 정보 확보 차원에서라도 조금만 더 읽어 보셨어도 그런 말씀은 하기 어려웠을 겁니다.
걱정됩니다.
한 번 처음부터 원문과 댓글을 읽어 보시고(저도) 누가 누구를 나무라야 할 건지 다시 생각해 보십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