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해군의 장사 여홍성의 시

<단군세기>(환단고기)에는 창해군의 장사인 여홍성黎洪星이 지었다는 시가 하나 보인다. 여홍성은 진시황을 암습했다고 하니 진秦나라 시대의 사람이다.
것이 사실이라면 중국 문학사를 다시 써야 할만한 대발견이다. 하지만 그럴 리가 있겠는가? 


村郊稱
弁韓, 別有殊常. 鐸韻[ak]
臺荒躑躅紅, 字沒苺苔. 鐸韻[ak]
生於剖判初, 立興亡. 鐸韻[ak]
文獻俱無徵, 此非檀氏. 錫韻[ek](상고음부-강조한 부분-압운)

마을 교외를 변한이라 하는데, 특별한 수상석(?)이 있었네.
받침대는 거칠고 배회하여躑躅 붉으니紅(해독불가), 글자는 사라져 이끼만 푸르네.
갈라져 처음으로 생기고, 설치를 끝내니 흥망속에서 저물었네(?)[夕].
문헌에 징거(증거)가 없으나, 이것은 단씨의 사적이 아니네.(“이것은 단씨의 사적이 아니겠는가?” 라는 뜻인거 같다.)


【시학】
1. 진秦나라 시대에는 ‘오언절구’(다섯개의 글자가 하나의 구를 형성)의 시가 없었다.

* 오언절구로 가장 유명한 것은《문선》에 실려있는 ‘고시십구수’다. 전한 시대의 작품이라고 알려졌으나, 대체적으로 동한 시기의 작품으로 인정된다. 《사기》와 《한서》에는 5언으로 쓰인 ‘가요’가 보이는데, 오언절구의 초보적인 작품으로 이해된다. 즉 오언시는 대체적으로 전한 무제 시기에 태동하여, 후한 시기에 발전한 시의 형식이다.

2. 진나라 당시의 ‘음(상고음)’으로 압운되어 있지 않으며, 당나라 시대의 ‘중고음’에 맞추어 압운이 되어 있다.

* 시 압운의 예
시경 관저
시경 야유사군
초사 하백

3. 중고음에 맞추어 압운은 되어 있지만, 당나라 근체시의 율격인 ‘성조(평성, 측성)’는 완전히 무시하고 있다. 


【문자언어학】
4. 제 2행의 첫구절은 해석 불가. 어법이 전혀 맞지 않는다. 또한 이시는 전체적으로 해독이 불가능하다. 어법뿐만이 아니라 알 수 없는 단어와 한자를 사용하고 있다.

5. 了는 선진(진나라 이전)시대에 없던 글자며, 후한 시대에 비로소 생겨난 글자다. 了자가 “행위의 마침”을 의미하는 것으로 처음 사용되던 시기는 위진남북조 시대부터다. 

6. 진나라 시기에는 ‘문헌文獻’이라는 단어가 없었다. 현대의 문헌文獻이라는 의미로 쓰인 단어는 ‘문학文學’이었다. ‘문헌文獻’이라는 말은 후대에 생겨난 말이다. 

* "選豪俊, 講文學"  호걸[豪]하고 영준[俊]한 (사람을) 선발하여, 문학(文學-전적)을 (두루) 가르쳐서   - 《한서 무제기》
- 문학(文學): 문헌, 전적, 서적을 말하는 것이다.

by 소하 | 2009/10/21 18:18 | 변위학(辨僞學) | 트랙백 | 핑백(1) | 덧글(15)

트랙백 주소 : http://tinis74.egloos.com/tb/2460872
☞ 내 이글루에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도움말]
Linked at 知不知尙矣 不知知病矣 : 양계.. at 2009/11/28 13:28

... 많은 부분이 같을 수 있는데, 음운 사용의 규칙으로부터 그 서적의 년대를 판정한다. 音韻. 先秦的用韻與後來的用韻有種種有同, 從使用音韻的規則上定書之年代.  (창해군 여흥성의 시)(5) 글 속에 담긴 사상에 의거하여 진위를 구별한다. 從思想上辨別. ① 사상의 계통과 특정 학파의 학술이 전수되는 과정에 의거하여 구별한다. 從思想 ... more

Commented by 아야소피아 at 2009/10/21 18:26
깊이 파면 팔수록 그 실체가 백일하에 드러나는 <ㅎㄷㄱㄱ>...
근데 이에 대해 '그들'이 무슨 변명을 댈지는 눈에 선합니다 :
1. 후대에 필사하는 과정에서 잘못 기록한 것이다! (6번 관련)
2. 여러 시적 기교의 시초는 기존에 알려진 것보다 더 오래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현재 이에 해당하는 시들이 남아 있지 않아서 그렇다! (1, 5 등과 관련)
3. 당신들이 옛 언어에 대해 뭘 그리 잘안다고 나서느냐!!! (2, 3, 4 등과 관련.... 이즈음 되면 억지죠;;)
Commented by 소하 at 2009/10/21 18:47
뭐! 그분들의 합창은 워낙 고매하셔서... "바보만들의 향연"을 굳이 신경쓸 필요가 없겠죠.
Commented by 한단인 at 2009/10/21 18:49
4. 그 사람들은 분명히 중화식 어법이 아닌 조선의 어법과 문체의 시이기 때문에.. 라고 말할테지요. 오오.. 위대한 정신승리법...
Commented by 소하 at 2009/10/21 20:38
그분들에게 "한어"에 대해서 말하는 것은 무리겠지요?
Commented by zert at 2009/10/21 19:00
5. 1만년전 대제국의 문화의 흔적이 남아 있는데, 그것을 지나인들이 사용한 고로 일시적인 블랙 테크놀로지-_-현상이 일어난 거시다!
Commented by 셰이크 at 2009/10/21 19:52
6.이미 모든것은 완성되어 있었고 후대에 하나씩 불완전히게 수복한 것 뿐이다!
Commented by 我幸行 at 2009/10/21 20:05
매식계에서는 인정하기 어렵겠지만 원래 漢字는 동이족이 만들었습니다.
漢人들이 늦게 배운 것을 탓할 필요는 없습니다. 소하님께서 의문을 가진 글자 몇개는 漢人들이 쓰기 전부터 韓人들은 써온 글자입니다.

Commented by 소하 at 2009/10/21 20:40
근데 자신들이 만든 글자를 왜 모를까요?
Commented by 我幸行 at 2009/10/21 20:45
그게 소햏도 의문입니다.
Commented by 前유사매식자 at 2009/10/21 20:09

12년에 임금께서 후단조와 더불어 한 뿌리의 자손임을 감동하여 형제시(兄弟詩)를 지으니,

형은 반드시 그 아우를 사랑하고(兄須愛其弟)
아우는 마땅히 그 형을 공경할지라.(弟必恭其兄)
항상 자그마한 일로(當以毫毛事)
골육의 정을 상하지 말지라.(莫傷骨肉情)
말도 한 구유에서 먹고(馬猶同槽食)
기러기도 또한 한 줄을 이루나니, (雁亦一行成)
방안에서 비록 즐기나(宅室雖云樂)
부인의 말을 삼가 들으라.(婦言愼勿聽)

<이것이 五言詩의 시작이다.>

ㅡ 《단기고사》기자조선 14세 누사(婁沙) 임금 조.


형은 반드시 동생을 사랑하고 (兄隱伴多是 弟乙愛爲古)
동생은 마땅히 형을 공경할지니라. (弟隱味當布 兄乙恭敬爲乙支尼羅)
항상 터럭 같은 일로서 (恒常毫毛之事魯西)
골육의 정을 상하게 하지 말아요. (骨肉之情乙傷危勿爲午)
말도 오히려 같은 여물통에서 먹고 (馬度五希閭同槽奚西食爲古)
기러기도 역시 한줄을 만드나니 (雁度亦一行乙作爲那尼)
내실에서 비록 환락하나 (內室濊西非綠歡樂爲那)
세언(細言)일랑 삼가 듣지 마소서 (細言乙良愼廳勿爲午笑)

ㅡ 《환단고기》태백일사 삼한관경본기 번한세가 하 누사임금 조.



최초의 오언시는 이렇게 따로 있습니다. (...)

...〈이것이 오언시의 시작이다〉

........
Commented by 前유사매식자 at 2009/10/21 20:20
본문의 시는 워낙 잘 알려지다시피, 화사 이관구가 《언행록》에 기재해놓은 유응두의 시를 《단기고사》에 저자 불명으로 옮기고, 이걸 이유립이 저자를 여홍성으로 바꾸고 조금 고쳐서 《환단고기》에 실어놓은 시입죠.

화사만 해도 이렇게 재미있는 사람이었는데 환단고기로 넘어오면 재미도 없다능 !
Commented by 소하 at 2009/10/21 20:45
<환단고기>는 중국 문학사를 뜯어 고쳐야 할 "중대한 문헌" -> 국가적 망신. 얼씨구나! 아햏햏!
Commented by 야스페르츠 at 2009/10/22 00:33
얼씨구나~ 천민들의 개드립이로다! 아햏햏!!
Commented by 뽀도르 at 2009/10/23 10:12
환단고기가 중국어 위키백과에 실려 있더군요 -_-;

《桓檀古記》是一部有关东北亚及朝鮮半島传说时代的歴史典籍。此书由太白教教徒桂延壽和李沂于1911年编写,主要描述上古天地之子降临和檀君建立古朝鲜。此书是以《揆园史话》为基础写成的。《桓檀古記》中的很多内容与《揆园史话》非常相似,多為虚构的伪史。

허구가 많은 거짓 사서라 적어놓았군요. 그래도 본문까지 적어놓은 걸 보면 한편으로 무섭습니다.
Commented by 소하 at 2009/10/23 13:52
<규원사화>의 기초위에 성립된 서적이라는 평이 적절하네요. 두가지를 읽어보면 '환단고기'가 '사화'보다 여러가지 면에서 질이 떨어지죠.
※ 로그인 사용자만 덧글을 남길 수 있습니다.

◀ 이전 페이지          다음 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