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조국에 칼을 겨눌 수는 없다.

테미스토클레스의 최후

   플루타르코스에 의하면 테미스토클레스는 가문은 매우 빈천했다고 한다. 그가 역사라는 무대에 이름을 남기게 된 것은 “페르시아 전쟁”을 통해서였다. 그가 이끄는 아테네 수군이 페르시아에 결정적인 타격을 주면서 페르시아 전쟁은 끝났다. 


   전쟁이 끝난 후에 그리스인들은 대국 페르시아의 침입을 대비하여 아테네를 중심으로 “델로스 동맹”을 맺는다. 아테네의 독주를 경계한 스파르타는 “펠로폰네소스 동맹” 결성한다. 전쟁을 통해 얻은 인기로 테미스토클레스는 아테네의 정권을 장악하게 되고 민중파의 영수가 된다. 하지만 그를 시기한 보수파(귀족)는 아리스티데스를 내세워 그를 실각시키기로 결심한다. 


   두 동맹을 테미스토클레스는 그리스의 위험요소로 보았다. 두 동맹의 격돌이 그리스 세계에 미칠 파장을 걱정했던 것이다. 그는 “펠로폰네소스 동맹”을 와해시키기 위해 노력하였다. 아테네의 보수파는 이것을 약점 삼아서 테미스토클레스가 그리스의 분열을 조장한다고 그를 몰아부쳤다. 결국 실각당한 그는 아테네에서 추방당한다. 보수파가 은밀히 보낸 자객과 큰 현상금이 걸려서 신변에 위협을 느낀 그는 페르시아로 망명한다. 


   페르시아의 왕은 이 적국의 장수를 정중히 대접하고, 그의 신변을 보장해 주었다. 몇 년 후에 그리스의 수군이 키프로스를 공격하자 마그네시아에 있던 그에게 페르시아의 왕은 은혜를 갚으라고 한다. 테미스토클레스는 적국의 장수였지만, 자신이 어려운 시기에 도와준 왕의 청을 거절할 수가 없었다. 그는 결국 신전에서 신들에게 감사를 드리고, 마그네시아에서 독약을 마시고 자살한다. 비록 자신을 버린 조국이지만 차마 칼을 들이댈 수는 없었던 것이다. 


   페르시아의 왕은 이 소식을 듣고 그를 더욱 깊히 존경하게 되었으며, 그의 가족들은 특별한 대우를 받았다고 한다. 그리스는 그가 죽은 후에 두 동맹이 격돌하는 "펠로폰네소스 전쟁"에 돌입하게 되고, 그리스의 영광은 이 전쟁으로 종말을 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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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하 | 2009/11/06 21:48 | 잡설 | 트랙백 | 덧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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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消爪耗牙 at 2009/11/06 23:18
그리스의 동맹국 장수를 참한 후 5관6참장을 하며 돌아갔으면 되었을 것을 ... !
Commented by 소하 at 2009/11/07 13:08
조국을 배신했다면 찬사와 영광이 악평으로 이어졌겠죠!
Commented by 들꽃향기 at 2009/11/07 02:56
그러고보니 진정한 영웅(?)은 비록 어쩔수 없는 상황이 있어 몸을 버린다 해도. 결국은 그 종결은 자신의 진심에 입각해서 하는 법이겠죠. 작금에 시사점을 주는 듯 합니다.
Commented by 소하 at 2009/11/07 13:12
그 사람의 사상과 가슴속에 품은 마음이 중요한 것이겠죠. 이미 그것이 드러나 있는데, 행적을 일일히 따지면서 이러쿵 저러쿵한는 것은 무의미하게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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