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랑군에 중국의 장성은 존재했는가?
삼국시대에 오나라의 역사가였던 위소韋昭*는, 중국의 군郡들에 대해서 이렇게 정의하고 있습니다.
* 위소韋昭: 오나라의 역사가. 오나라의 정사인《오서》를 편찬하다가 손호에게 주살당한다. 지금까지 전하는 것으로는 《국어주》가 있다. 좌구명의 《국어》는 보통 위소의 주석과 함께 통용된다.
위소가 말하길: 중국中國은 「내군內郡」이라고 하며, 가장자리에 이적夷狄(야만족)과 장새障塞가 [접하고] 있는 곳을 「외군外郡(변군邊郡)」이라고 한다.
韋昭曰:中國為「內郡」, 緣邊有夷狄·障塞者為「外郡」. 《한서漢書》
주지하다시피 몽염이 쌓았던 장성을 보통 만리장성이라고 부릅니다. 위소는 왜 “장성”이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았던 것일까요? 한나라 시기의 한안국의 증언을 보도록 합시다.
《한서漢書 한안국전韓安國傳》(무제시기)
이후로 몽염에게 [군사를 주어] 진나라는 호(흉노)를 공격하여 수천리의 땅을 얻었는데, 황하의 [안쪽을 전부] 경내로 삼았으며, 돌로 『성(城)』을 만들고, 나무로 『새(塞)』를 만들었습니다. 그 이후로 흉노족은 황하에서 말에게 물을 마시게 하지 못하였고, 봉수를 설치한 이후로는 말을 유목하지 못하였습니다.
及後蒙恬/爲秦侵胡, 辟數千里, 以河爲竟, 累石爲『城』, 樹楡爲『塞』, 匈奴不敢飮馬於河, 置烽燧然後敢牧馬.
만리장성이란 본래 <한안국전>에서 보는 바와 같이 돌로 쌓은 것만 지칭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장성” “새” “장”은 개별적인 의미로도 사용되었으나, 세가지를 포괄하는 의미로도 사용되었다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을 포괄하는 의미란 곧 “방어선”을 의미하는데, 변군과 야만족의 경계가 바로 “새”인 것입니다. 자주 보이는 표현인 “새외”란 곧 문명국 밖의 야만족을 뜻하는 것이죠. 조충국의 말을 보도록 하지요.
《한서漢書 조충국전趙充國傳》(선제시기)
북쪽의 변경은 돈황敦煌에서부터 요동(遼東)까지 1만 1천 500리인데, 새(塞)*에 올라서 연기를 피우는(수隧)** 관리와 군사들이 수천명입니다.
北邊自敦煌至遼東萬一千五百餘里, 乘塞列隧有吏卒數千人.
* 새(塞): 장성과 동일한 의미로 쓰였다. 한나라 당시에는 “방어선”의 개념을 가지고 있었지만, 전문 용어가 없었기 때문에 “새”와 “장성”이란 단어로 연용한 것으로 보인다.
** 수(隧): “수燧”로 읽어서, “봉화”라는 뜻을 가진다. 연기로 알리는 것을 말한다.
조충국은 만리장성을 “새(塞)”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즉 “새(塞)”란 문명국과 야만족을 구분하는 ‘경계선’인 동시에 ‘방어선’으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또한 “장성”도 같은 의미로 사용되기도 하였습니다. 여기에서 이런 단어(“장성” “새” “장”)들의 의미를 해독할 때에는, 문맥을 통해서 살펴야만 비로소 정확한 의미에 도달하게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태강지리지》의 내용을 무조건 “허위사실”로 몰아붙일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저는 사료를 부정하는 것이나, 쉽사리 결론을 내리는 것은 좋아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잘못된 훈고나 오해, 오독 등으로 인한 사실이 많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잘못을 깨닫지 못하면, 그 잘못을 고치거나, 다른 사람의 말은 들리지 않습니다. 저에게 가장 두려운 부분은 바로 이것입니다. 
경기* (수도지역)
내군 (중국)
외군 =변군(이민족이나 장성, 새塞와 접하고 있는 곳)
새塞 (=장성, 장)
야만족 (새외, 이민족)
*“경기”: 이 단어는 후한 말기에 비로소 등장하기 시작한다.(후한서 삼국지) 수도권 지역을 지칭하는 말인데, 우리나라의 “경기도”는 여기에서 유래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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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소하 2011/03/02 20:24 #
한나라의 지방체제를 보면, 로마 시대의 이탈리아 본국, 원로원 속주, 황제 속주가 생각납니다.
에로거북이 2011/03/02 20:37 #
일리 있는 말씀이신 것 같습니다. 한반도 같은 작은 땅이라면 모를까, 한족 뿐 아니라 (한족의 정의도 애매하지만... 冠帶之民 정도가 당시 표현에 맞을려나요? ) 수천만의 이민족이 함께 살고 있었던 중원에서 로마 제국 유사한 시스템이 있었다고 생각하는 게 타당할 듯 합니다.
소하 2011/03/02 21:32 #
지역의 특성에 따라서 사막, 하천(강), 목책, 석성 등이 모두 방어선을 건설하는데 이용된 것으로 보입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사람들의 생각에서 공통점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 신기합니다.시오노 여사의 중국은 만리장성으로 인하여 닫힌 세계였으며, 로마는 열린 세계였다는 서술은 선입견이라고 생각됩니다.
이 글들은 이러한 고정관념을 버려야 한다는 취지에서 쓴 글입니다.
에로거북이 2011/03/02 21:52 #
네 잘 알겠습니다.p.s.
영화 <동방불패>만 봐도 명나라 시기에도 묘족들이 활개를 치고 다녔었죠 ㅋㅋ 그게 맞는 것입니다.
소하 2011/03/02 22:43 #
전 동방불패가 그다지 재미는 없더군요. 전편이었던 "소호강호"의 주제곡은 너무 좋았고, 제목도 더 폼나는 것 같습니다. ~
2011/03/02 21:03 #
비공개 덧글입니다.
소하 2011/03/02 21:38 #
내군과 변군의 특성 중에 하나는 태수의 경력이나 능력에서 차이점을 보인다는 점입니다. 아무래도 변군의 태수는 군사적 능력이 더 뛰어난 사람을 기용했습니다. 한사군을 바로 이해하려면 이러한 지방통치제도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됩니다.본격적으로 지방제도를 다룬 것은 아니지만, 이러한 사실들을 탐구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죠. http://tinis74.egloos.com/2488470
hyjoon 2011/03/02 22:07 #
변군얘기 나올때마다 '한사군이 식민지→한사군이 한반도 북부에 있었다는 것은 한국이 중국 식민지였다는 소리→식민사학의 역사왜곡'라는 災野詐學의 개드립이 생각나는군요. (ㅡㅡ;;;)
소하 2011/03/02 22:45 #
서유럽도 모두 로마의 식민지에서 출발했지요. 지금은 고대 로마세계에 편입되지 않았다는 것으로 동유럽을 경멸하기도 하지요. 이것은 인식의 차이라고 봅니다. 피해의식과 일종의 열등감이 아닐까요?
ㅇㅇㄴㄲ 2011/03/03 00:12 #
塞는 그렇다쳐도 운장이나 상하장이 있었으니 鄣은 발견을 기대해 볼법도 한데 말입니다.
소하 2011/03/03 00:32 #
주석에 보이는 "운장"은 저도 매우 궁금합니다. ~
야스페르츠 2011/03/03 09:09 #
잘 보았습니다. 사실 저 시대에 국경이라 부를 수 있는 선을 긋는데 일부나마 성공(?)했다는 것만으로도 중국은 먼치킨인 것 같습니다.
소하 2011/03/03 12:27 #
진시황-한무제-광무제로 이어지는 제국의 통합과 분열... 그것이 기록으로 남은 것은 시대의 요구였을까요? 우리 고대사에서 이런 점을 자세히 추적할 수 없어서 아쉽습니다.
소하 2011/03/03 12:29 #
고생하십니다.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무관심과 무대응, 무시가 정답인 것 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