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10월 04일
변위학(辨僞學)3: 이소룡과 방술사方術士
70, 80년대 이소룡(Bruce Lee)이 우리나라 청소년들의 로망이던 시절이 있었다. 나 또한 예외는 아니어서 중학교 시절(80년도 후반)에 그가 쓴 《절권도》를 보면서, 쌍절곤을 열심히 연습하던 일이 떠오른다. 물론 이것은 그의 영화 '맹룡과강'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콜로세움을 배경으로 펼쳐지던 이소룡과 척노리스의 대결은 가장 기억에 남는다. 물론 지금 다시 본다면 당시에 느꼈던 감회는 없을 것이다. 현재의 화려한 영상에 길들여졌기 때문이리라. 헌데 왜 다른 사람이 아닌 그가 여러 사람들의 로망의 대상이 되었던 것일까? 

--- 영화 맹룡과강 중에서
일찍이 명明나라의 호응린胡應麟은 중국 서적의 위작僞作(가짜서적)에 대해 이렇게 평하였다.
凡四部之僞者, 子爲盛, 經次之, 史又次之, 集爲寡.
대저 사부四部의 위작僞作들 중에서 자부가 가장 많고, 경부가 그 다음이며, 사부가 또한 그 다음이고, 집부가 제일 적다. ---《사부정와四部正訛》
사부四部란 옛 중국의 도서 분류법으로, 경부經部는 유가 경전을, 사부史部는 역사에 관련된 서적을, 집부集部는 각종 문장과 시 문집 등을, 자부子部는 앞의 세부분을 제외한 나머지 학문분야로, 철학 과학 천문 종교 의술 병법 무술 예술 점술서 등을 말하는 것이다.
자부 서적들의 위작이 많았던 이유는 종류가 많기도 하지만, 이 분야가 대중과 가까운 존재였기 때문이다. 위작자들의 기원은 매우 오래되었는데, 그들은 "방사方士"라 불리던 방술사方術士들이었다. 약 2500여년전 전국시기(BC450-220)에 연나라와 제나라 지역에서 처음 발생했다. 그 원인을 고힐강은 이 지역이 해안지대와 접하고 있어, 신비한 자연현상을 경험하는 일이 많았기 때문이라고 추정한다. 이들의 중심사상은 이전부터 존재하고 있었던 음양과 오행의 개념을 결합하고, 여기에 민간신앙과 신선술(불사론)을 더하여 독립된 유파를 형성하였다. 음양오행설이라고 하면 어렵게 느껴질지 모르지만, 사실 우리의 일상 속에서도 매일 접하는 것이다. 일주일의 단위인 일월화수목금토는 '일월 = 음양陰陽' '금수화목토 = 오행五行'으로 음양오행설에서 기원한 것이다.

전국시대의 연나라와 제나라
중국을 통일했던 진시황은 이들을 특히 우대하였는데, 그들을 불러 박사로 임명하고 전설상의 신선들을 찾아 불사의 약을 찾아 오게 한다. 또한 연나라 출신의 방술사였던 노생은 진나라의 멸망을 예언하기도 했다.
燕人盧生使入海還, 以鬼神事, 因奏錄圖書, 曰「亡秦者胡也」. 始皇乃使將軍蒙恬發兵三十萬人北擊胡, 略取河南地.
연나라 사람 노생盧生이 바다에서 돌아와(신선을 찾는 일.) 귀신을 섬기는 일과 도서(예언서)를 바쳤는데, [그 책에서] 말하길「진秦을 망하게 하는 것은 호胡이다」라고 적혀 있었다. 이에 시황은 장군 몽괄에게 군사 30만을 모아 북쪽의 호를 공격하게 하였는데, 하남의 땅을 공략하여 얻었다. 《사기. 진시황본기》
호胡는 당시 북쪽의 야만족이었던 흉노를 지칭하는 것으로, 진시황은 몽괄의 공격에도 안심하지 못하고 만리장성을 쌓게 한다. 또한 진시황의 순행 경로를 살펴봐도 제나라와 연나라에 집중되어 있는데, 방술사와 더불어 신선을 찾으려는 진시황의 굳은 의지가 엿보인다. 이후에 방술사들은 불사단약을 재촉하는 진시황을 피해 달아나게 되는데, 대노한 진시황은 갱유(학자들을 땅속에 파묻은 사건)를 단행한다.
또한 진시황릉은 그 발굴 규모가 엄청나서, 현재 중국은 보존 처리 문제로 발굴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중국의 고고학자들이 진시황릉 안을 시추해 본 결과 다량의 수은이 있음을 확인하였다. 사서에 수은으로 만든 강이 있었다는 기록과 일치한다. 수은은 방술사들이 '불사약'을 만들던 재료 중 하나였다. 결국 분서갱유나 만리장성 진시황릉 등, 진나라에 굵직한 사건들의 이면을 살펴보면 그 배후에 방술사의 그림자가 깊게 배어 있음을 깨닫게 된다.

만리장성
진나라를 이은 한나라의 400년 역사를 돌이켜보면, 유가사상이 지배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은 겉모습일 뿐이고, 실제로는 방술사들의 세상이었다. 한나라 초기에 황로(황제와 노자)학이 크게 성행했다고 하는데, 이것은 황제와 노자의 도가 사상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신선불사 사상을 가르키는 것이다.
전한을 탈취하여 신나라를 건설한 왕망도 통치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전국적으로 수만명의 방술사들을 모집한다.(당시에는 이미 한나라 전역에 퍼져 있었다.) 《하도》《낙서》《칠위》와 같은 참위서(예언서)들은 이들의 주도하에 제작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왕망이 항상 유흠과 함께 위작자의 원흉으로 지목되는 원인이 여기에 있다. 후한의 광무제도 참위설(예언설과 운명론)을 맹신한 것은 너무나도 유명한 사실이다.
《한서. 예문지》를 보면 신선가와 음양가, 점복(점술), 천문, 의약 등 그들의 영향이 미치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로 방대하다. 또한 그들은 자신들의 이론을 종합하여 경전을 만들었는데, 지금까지 현전하는 것이 《태평경》이다. 이것을 기반으로 후한 말기에 도교가 탄생하게 된다. 불교와 도교는 위진남북조 시기에 첨예하게 대립하였고, 당송시절에 도교의 교세는 최고조에 달한다. 당시에 금단술(불사약의 제조. 제조법)이 크게 성행하여, 심지어 황제들도 그들이 제조한 약을 복용하고 사망하는 일도 있었다. 민간에서는 더욱 광범위하게 퍼져 있었다. 
전한 초기 마왕퇴 백화(비단에 그린 그림) 도인도(도인이 되는 체조)
도교에서 말하는 도道란 불사를 의미하는 것이다. 물론 도가 사상과는 아무런 관련도 없는 것이지만, 도사 나부랭이들이 노자의 이름을 도용한 것이다. 유명한 사람의 이름을 빌려 권위를 획득하려는 의도였던 것이다.
蓋老子百有六十餘歲, 或言二百餘歲, 以其脩道而養壽也.
대략 노자는 160여세까지 살았다고 한다. 혹은 200세까지 살았다고도 하는데, 그 (무위의) 도를 닦아서 장수를 누렸던 것이다.《사기. 노자전》
《사기》에 보이는 이 기록도 사마천이 방술사 계통의 자료를 이용하여 기록한 것으로 보인다. 아니면 후대에 도사 나부랭이들이 첨가한 것일지도 모른다. 《도덕경》어디에 불사 사상이 있다는 말인가? 그리고《도덕경》 최고의 주석본인 <하상공 주석>과 <왕필 주석>은 각각 민본과 관본으로 설명하는데, 내가 보기에 하상공 주석은 방술사(도교) 계통으로, 왕필 주석은 도가(사상) 계통으로 이해하는 것이 더욱 명확한 것 같다.
과학문명이라는 현대에 와서는 이런 무리들이 사라진 것일까?
풍수와 운명론, 귀신을 섬기는 무리들.
새로 개발된 신약이라면서 사람들의 주머니를 터는 무리들.
잊을만 하면 앞에 불쑥 나타나서 "도를 아십니까?" 하는 무리들.
<환단고기> 등과 같은 후대에 위작한 도교(대종교 증산도) 경전을 가지고 역사라 하는 무리들 등등등..
이들이 모두 현대판 방술사方術士들로 하나같이 거짓으로 세상을 속이는 똑같은 족속들이다. 이런 면을 본다면, 역사는 시대가 바뀐다고 변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순환하는 것 같다. 지금도 여전히 저런 바보들의 낚시에 걸려 맹렬한 추종자로 변하는 이들도 있고, 또한 거짓인지 알면서도 이익과 탐욕, 욕망에 사로잡혀 눈을 질끈 감아 버린다.
대체 방술사들과 이소룡이 무슨 상관이냐? 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무술의 본질이 무엇인가? 쌈질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거기에 무슨 심오한 철학적 사고가 필요할 것이냐는 말이다. 그저 약간의 윤리적인 면만 있으면 될 것을... 태극. 음양. 오행. 팔괘 ~~~
위진남북조 시기 방술사들은 불교, 도교, 의학, 무술 등으로 분화되어 갔다. 중국 무술의 원류를 살펴보면 방술사의 영향이 짙게 배어있는데, 먼저 시조하면 떠오르는 인물들이 누구인가? 달마와 장삼풍일 것이다. 영화나 무협지에서도 자주 등장하는데, 그들이 불교와 도교의 인물이라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소림무술은 선종의 시조인 달마를, 태극권은 무당파의 시조라는 장삼풍을 끌어들인 것은, 도교에서 황제와 노자를 끌어들인 것과 서로 비슷하다. 이들은 무술과 아무런 관련도 없을 뿐더러, 장삼풍은 실존 인물인지조차 불확실하다.
이소룡(Bruce Lee)은 이런 전통적인 무술의 비논리와 불합리성을 간파해 내고, 형식과 환상에 얽매이던 것을 과감히 걷어내 버린 것이다. 어느 분야에서든 개혁과 창조정신으로 거짓과 환상을 걷어내고, 진리를 향해 달려가는 것이 학문이 아니겠는가?
"無論做哪門學問,總須以別僞求真爲基本工作。因爲所憑借的資料若屬虛僞,則研究出來的結果當然也隨而虛僞,研究的工作便算白費了。"
"어떤 학문을 막론하고, 거짓을 구별하고 진리를 탐구하는 것을 기본으로 삼아야 한다. 만약 허위의 자료를 이용하게 된다면 연구결과도 당연히 허위를 따르게 되며, 연구 작업도 헛되게 된다. "
양계초《중국근삼백년학술사. 변위서》梁啟超《中國近三百年學術史. 辨僞書》
참고문헌
사마천《사기》
반고《한서》
장학성《문사통의》
고힐강《변위총간. 사부정와》《한대학술사략, 진한의 유생과 방사》《고사변. 음양오행설하의 정치와 역사》
양계초《중국근삼백년학술사》《음양오행설의 내력》
장심징《위서통고》
양서민《중국변위학사》
마서사《중국민간종교사》
경희태《중국도교사》
이소룡《절권도》
《중국무술사전》
# by | 2007/10/04 13:17 | 변위학(辨僞學) | 트랙백 | 핑백(1) | 덧글(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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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나 징험. 주술 등을 적어 놓은 것으로, 무당이나 방술사들이 만든 것이다. 직접적인 사료로 쓰기에는 어려운 것인데, 《사기정의》에서는 참고사항으로 보충한 것이다. 방술사의 기원에 대해서 《용어하도》는 현재 전해지지 않는데, 《사기》뿐만 아니라 다른 곳에도서 인용하고 있기 때문에 고찰이 가능하다. 《용어하도》 본문과 각 시기의《사기정의》에 인용된 내용을 ... more
포스팅 잘 읽었습니다~
p.s. 여담입니다만, 위의 지도에서 '平襄' 보고 "헉!" 했다가 다시 놀란 가슴을 진정시켰습니다.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읽는 바람에 그만)
요즘은 사소한 거에도 자꾸 가슴이 철렁 내려앉아 큰일입니다.
http://tinis74.egloos.com/452696
악질식민빠님/ 그분들이 다 그렇죠. 뭐.. ~~척하는 것. <고사변>을 말하면서 이것이 논문집인지도 모르는 것 같던데요...큭큭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