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天下爲公
天下爲公 소하

<전국시기 진나라의 “주문”사용과 육국의 “고문”사용설> - 왕국유

중국사(中國史)소하 2009/11/14 02:50

   * 이 글은 왕국유가 진나라 이전의 문자에 대해서 고찰한 글인데, 원문에서는 문단을 나누지 않았다. 번역문에서 문단을 나누고 소제목을 붙인 것은 내 임의대로 한 것이다. 결론 부분의 번역문에 모호한 부분이 있는데, 천박한 학문으로 인해 빗어진 오역일 것이다. 


   <전국시기 진나라의 “주문”사용과 육국의 “고문”사용설>(戰國時秦用“籒文”六國用“古文”說)

   --- 왕국유王國維《관당집림觀堂集林》제7권 예림藝林7.

   들어가는 말
   나는 과거에 《사주편소증》의 <서문>을 지으면서 전국시대에 진秦나라가 “주문籒文”을 사용하고, 육국六國이 “고문古文”을 사용했음을 의심하였는데, 진나라 시기의 옛 기물과 유문이 그 증거였다. 이후에 한나라 사람의 글에서도 반복되어, 이 설을 더욱 바꿀 수 없음을 알게 되었다. 


   1. 주문籒文(대전과 소전)
   반맹견(반고-《한서》의 저자)은 「《창힐》․《원력》․《박학》 3편의 문자는 많은 부분을 《사주》편에서 인용하였는데, 글자의 자체가 매우 다르니 (이것이) 이른바 “진전秦篆”이다.」라고 하였다.

   허숙중(허신-《설문해자》의 저자)은 「진나라의 시황제가 처음으로 천하를 병합하자, 승상 이사는 진나라의 문자를 통일하였으며, 진나라의 문자와 합치되지 않는 것은 (모두) 버렸다. 이사가《창힐편》을 지었고, 중차부령 조고가 《원력편》을 짓고, 태사령 호무경이《박학편》을 지으니, 모두 《사주》의 “대전大篆”을 취득하고, 잘못됨을 살펴 고쳤으니 (이것이) 이른바 “소전小篆”이다.」라고 하였다.

   이것은 진나라의 “소전小篆”은 본래 “대전大篆”에서 나온 것이며, 《창힐》삼편은 “대전大篆”에서 나온 것이 아닌데, 이전에 고친 것을 살피지 않고, 소위 진나라 문자인 “주문籒文”이라고 한 것이다. 


   2. 고문古文(육국문자)
   사마자장은「진나라가 “고문古文”을 없애버렸다.」고 하였으며, 양자운(양웅)은「진나라가 “고문古文”을 잔멸시켰다.」고 하였으며, 허숙중(허신)은 「“고문古文”은 진나라가 끊어버렸다.」라고 하였다.

   (내가) 생각하건대 진나라가 “고문古文”을 멸실시킨 것은 역사에 자세한 기록이 없다. 오직 《시경》과 《서경》을 금지한 두가지 사실만이 문자로 기록되어 있을 뿐이다.
육예(육경)의 서적은 제나라와 노나라에서 시행되었으며, (“고문古文”은) 조나라․위나라․진나라에서 유포된 것이 적었으며, 《사주편》은 여전히 동방의 여러 나라에서 시행되지 않았다. 그(육경) 서체는 모두 “동방문자”의 서체다.

   한나라 사람들은 그 육예(육경)에 사용된 서체를 “고문古文”이라고 하였다. 진나라 사람들이 파기한 문자와 태운 책이 모두 이 문자로 (기록되었던 것인데), 이것이 (바로) “육국문자”로 “고문古文”(이라고 한나라 사람들이 부른 것)이다.


   3. 결론
   “진서팔체”를 살펴보면 “대전大篆”은 있으나 “고문古文”은 없으니, 공자의 벽중서(공자의 집 벽에서 나온 책)와 《춘추좌씨전》은 동토의 서적으로, “고문古文”을 사용하고 “대전大篆”은 사용되지 않은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고문古文”과 “주문籒文”은 전국 시대에 동쪽과 서쪽 두 땅의 문자로 이름이 다르며, 그 근원은 모두 “은주고문”에서 나온 것이다.

   진나라는 (주나라의) 옛 땅인 종주宗周의 거주하였으니, 그 문자는 풍豐과 호鎬의 잔재이다. 그러므로 “주문籒文”과 “주문籒文”에서 나온 “전문篆文”은 “은주고문”을 제거하고 “동방문자”와 비교하여도, 즉 한나라 시대의 “고문古文”과 가까운 것이다.(이 부분은 이해가 되지 않는데, 아마 내가 잘못 번역했기 때문인 것 같다.)

   진나라가 육국을 멸망시킨 후부터, 백전의 위엄으로 자리하고, 엄격한 법을 시행하여 문자는 통일되니, 무릇 “육국문자”는 고적에서만 존재하였으며, 이미 분소되고 잔멸되어서 민간에서 사용되는 문자는 진나라의 문자가 아니었다.

   세상에 전해지는 진나라 진시황 26년 소와 많이 새겼던 이세 원년 소인 “권량”등을 살펴보면, 비록 나라가 1-2년 중에 멸망하여 진나라의 법이 시행된 것이 (엄격하였다고) 하더라도, 당대에 동일한 문자를 모방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진나라가 여섯 나라를 멸망시킨 이후부터 초나라와 한나라의 중간의 10년간에 이르기까지 “육국문자”는 끊어지고 시행되지 않았던 것이다.

   한나라 사람들은 육예의 서적을 모두 이 종류의 문자로 사용했으며, 또한 그 문자는 당대에 이미 폐지됐으므로 “고문古文”이라고 했던  것이다. 이러한 말을 계승되어 온 것은 이미 오래되었는데, 만약 여섯나라의 “고문古文”을 “은주고문”이라 한다면, “주문籒․전문篆”은 모두 그 이후에 있었으며, 허숙중이 《설문해자》<서문>에서 말한 것도 이와 같으니, 그 이름인 (고문古文의 뜻을) 따라서 그 실제의 (의미를) 잃어버렸던 것이다.

    【원문】
   余前作《史籒篇疏證》<序>, 疑戰國時秦用“籒文”, 六國用“古文”, 並以秦時古器․遺文證之. 後反覆漢人書, 益知/此說之不可易也.

   1.
   班孟堅言:「《蒼頡》․《爰歷》․《博學》三篇文字多取諸《史籒》篇, 而字體復頗異, 所謂“秦篆”者也. 」許叔重言:「秦始皇帝初兼天下, 丞相李斯乃奏同文字, 罷其不與秦文合者. 斯作《蒼頡篇》, 中車府令趙高作《爰歷篇》, 太史令胡毋敬作《博學篇》, 皆取史籒“大篆”, 或頗省改, 所謂“小篆”者也. 」是秦之“小篆”本出“大篆”, 而《蒼頡》三篇未出“大篆”, 未省改以前, 所謂秦文即“籒文”也.

   2.
   司馬子長曰:「秦撥去“古文”.」揚子雲曰:「秦剗滅“古文”.」許叔重曰:「“古文”由秦絕. 」
案:秦滅“古文”, 史無明文. 有之, 惟一文字與焚《詩》․《書》二事. 六藝之書行於齊․魯, 爰及趙․魏, 而罕流布於秦, 猶《史籒篇》之不行於東方諸國. 其書皆以“東方文字”書之. 漢人以其用以書六藝, 謂之“古文”. 而秦人所罷之文與焚之書, 皆此種文字, 是“六國文字”即“古文”也.

   3.
   觀“秦書八體”中有“大篆”無“古文”, 而孔子《壁中書》與《春秋左氏傳》, 凡東土之書, 用“古文”不用“大篆”, 是可識矣. 故“古文”․“籒文”者, 乃戰國時東․西二土文字之異名, 其源皆出於“殷周古文”. 而秦居宗周故地, 其文字猶有豐․鎬之遺, 故“籒文”與/自“籒文”出之“篆文”, 其去“殷周古文”反較“東方文字”, 即漢世所謂“古文”. 爲近.
自秦滅六國, 席百戰之威, 行嚴峻之法, 以同一文字, 凡“六國文字”之存於古籍者, 已焚燒剗滅, 而民間日用文字又非秦文不得用. 觀傳世秦“權量”等, 始皇廿六年詔後, 多刻二世元年詔, 雖亡國一․二年中, 而秦法之行如此, 則當日同文字之效可知矣. 故自秦滅六國以至楚․漢之際十餘年間, “六國文字”遂遏而不行.
漢人以六藝之書皆/用此種文字, 又其文字爲當日所已廢, 故謂之“古文”. 此語承用既久, 遂若六國之“古文”即“殷周古文”, 而“籒․篆”皆在其後, 如許叔重《說文 序》所云者, 蓋循名而失其實矣.


    【요약】
   옛 전적에 보이는 “古文고문”이란 말은 본래 전국시대의 “여섯나라가 사용하던 문자(6국 문자)”라는 뜻이었는데, 후대의 사람들이 이 말을 글자 그대로 “옛 글자”라는 의미로 이해하였다. 왕국유는 “주문”이 진나라가 사용하던 서쪽 지방의 문자며, “고문”은 여섯나라가 사용했던 동쪽의 문자였음을 지적하고 있다.

   현재의 관점으로 보면 당연한 말이지만, 당시만 하더라도 획기적인 의견이었다. 이후로 고고 유물의 발굴되면서 왕국유의 의견이 사실임이 증명되었고, 여섯 나라의 문자도 서로 다른 것임을 알게 되었다.
555구석규,《문자학개요》, 상무인서관, 1988.

 
   【덧글】
   전적에 보이는 “고문古文”이란 말을 단순히 옛글자(은나라까지 소급하여)라고 생각하면서, 대가라도 된 것처럼 거만한 사람들을 간간히 보게 된다. 혹 이런 사람을 만나게 된다면 문자학의 기초가 없는 사람으로 무시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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